영접 기도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




신앙(공동체)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중에 '영접 기도'라는 내용문을 주고서 읽으라 하는 경우가 있다. 그 기도문을 읽고 나면 '당신은 구원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길거리 복음 전도의 현장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교회(공동체)안에서, 특히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 중에도 일어나는 일들이다.



| 영접 기도가 그토록 대단한 것일까?

영접 기도문 하나를 읽었을 뿐인데, 그것만으로 구원에 이른다면 '이 세상 어느 누가 구원에 이르지 못하겠는가?'라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상식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상대의 답변을 듣기도 전에 이미 식상해 버린 듯 혹은 체념해 버린 듯 혼잣말로 중얼 거리겠지.




'개나 소나 다 가는 천국이라면,

선하게 살았든 악하게 살았든

누구나 가는 천국이라면


나는 그곳에 가고 싶지 않다.


그곳은 최소한

내가 아는 천국은 아닐 테닌까.'


하지만 교세, 특히 교회의 지지세력을 넓히려는 정치적 활동에 관심이 집중되다 보면 교회 사역자 분들은 물론 성도 분들도 영접 기도문에 집착하게 된다. 영접 기도문을 많이 읽히게 해서 자기 교회(공동체)에 소속된 구원받은 이들을 많이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당신은 구원을 받았습니다.'라며 확실하게 말해주는 이가 있다면, 그리고 혹시나마 그의 말이 진실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해 주는 이를 교주로 섬기게 된다.


그 교주의 마음에 드는 행동만 하면 구원은 쉽사리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교주는 '영접 기도'라는 형식을 빌어 자신의 교세를 확장하려 할 뿐일테다.


영접 기도문을 읽었다는 자체만으로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 우리는 최소한 스스로에게나마 질문을 해 봐야 할 것이다. 아울러 그 질문에 명쾌한 답을 얻지 못했다면, 반대의 상황에 대해서도 질문을 해 봐야 하리라. '영접 기도문을 읽은 것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구원은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나는 영접 기도문을 읽는 것 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는 그 사실에 반대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의 삶에서 볼 수 없다면 동물들의 삶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려는 야훼 하나님의 경륜과 계획은 '온 만물에 숨겨져 있어서, 모두가 충분히 알 수 있다'고 기록한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중략)...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롬1:19~20)


사자의 새끼로 태어났지만, 사자다운 모습을 갖지 못한 새끼는 도태되고 만다. 강한 날개로 하늘을 호령하는 독수리의 새끼로 태어났지만, 두려움에 사로잡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순간에 날개 한 번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새끼는 그 어미가 절대로 보호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례는 소위 셀 수 없이 많다.

동물들에게서 볼 수 있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스.스.로. 행.동.하.는. 자'에게 강함이 있다.


자신의 부모가 아무리 강한 존재라 할지라도, 평생을 부모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다. 반드시 스스로 (부모와 같은) 강한 모습을 지녀야만 살아남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신앙의 이야기로 되돌아 가서, 영접이라 함은 무엇인가?

이는 상대의 강함에 짖눌려 마음과는 다르게 육신적으로만 그의 부하가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그를 나의 주인으로 삼아 내 목숨까지도 능히 바치겠다는 선포와도 같은 그것을 영접이라 말한다.


따라서 성경은 영접과 함께 거론하여 말하는 일순간의 변화를 언급하는데, 그것은 신분의 변화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2)



the right to become children of God


회원권을 발급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는 의미와도 같다. 그 자격만을 갖는다면, 나는 회원권을 언제든 발급받을 수 있고 발급받은 그 순간부터 나는 합법적인 회원으로서 활동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회원이라 함은 영원한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져야 할 것이다.


'회원으로서의 활동'이라는 항목이 있다. 소속된 단체를 영광되게 만드는 행동을 한다면 모를까 단체의 명예를 훼손하는 방식으로 행동할 경우 그 회원에게 합당한 징계조치를 취하는 게 상식이다. 그가 진정 단체를 아끼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그가 회원의 자격으로 활동하는 매순간 순간을 감시하듯 눈여겨 본다는 의미다. 만의 하나라도 단체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사례가 발견되었다 싶을 때에는 가차없이 회원자격을 박탈해 버린다.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단체의 명예를 위해서만 활동하는 회원이라는 것이 증명된다면, 그는 영원한 회원된 자격을 그때서야 인정받게 된다.


천국시민의 자격 역시 그러하지 않겠나 싶다.

영접하는 것 자체도 쉬운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영접했다고 해서 그에게 영원한 소속감이 부여되는 것도 아니라 생각한다. 지난 날에는 죄의 노예라는 신분으로 살았었기에 그는 습관적으로 죄의 노예처럼 살아가려 할 것이다. 하지만 신분이 바뀌었으니 예전 습관을 고쳐야 하지 않겠는가? 이를 위해 '특별한 훈련 기간' 또는 '특별한 고통이 주어지는 과정'이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어긋난 뼈를 교정하는 과정에서 더 큰 고통의 순간이 지나야 제대로 맞춰지는 것과 같다.


이때 그 과정을 잘 견뎌낸 자로서 새로운 신분에 걸맞는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리고 일정 기간 동안 '단체를 명예롭게 하는 사람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늘 시험받는 시간을 보낼 것이고, 그 기간이 지나면 '영원한 회원 자격'을 부여할 사람인지 아닌지의 최종 심사가 마지막 재판 때 이루어질 것이다.





기드온의 300 용사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설명하기 좋은 성경 말씀이라 할 수 있다.

주님의 나라와 그의 백성으로서 적군과 싸우겠다고 스스로 모여든 병사(heavenly army)라 할지라도, 주님의 계획대로 담대하게 행동할 수 있는 무리인지 아닌지는 심사를 거쳐봐야 한다. 그 마음 속에 두려움을 가진 자, 혹은 승리하길 바라는 마음보다 더 큰 마음을 집에 두고 나온 이들은 야훼의 군대로 합당하지 않다는 뜻이다.


내 가족이 소중하다고 느낀다면, 반드시 그 전쟁에서 이겨야 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함이 옳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두려워 떠는 자기 다리를 몽둥이로 쳐서라도 능히 적군들 앞에서 당당하게 싸울 수 있는 강한 다리로 만들어야 함이 옳다.


전쟁 앞에서 두렵지 않은 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그 나약함만을 (마치 위로한다는 취지로) 계속 강조한다면 어떤 군대가 강하고 담대한 모습을 가질 수 있으며, 어떤 군대가 하늘을 찌를 듯한 사기로 충족될 수 있겠는가?


군인이 되었다지만 골리앗의 모습을 본 뒤 오금이 져려와 벌벌 떠는 모습만을 보인다면, 그는 야훼 하나님의 군대가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성령의 열매를 맺은 자'를 강조하듯 말한다.


by facebook of Fruits of the Holy Spirit Team



성령의 열매는 왜 강조하는 것일까?


천국에서 배고프면 따서 먹으라는 의미에서 강조하는 걸까?

아니다. 주님의 계획이 무모해 보일지라도, 능히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해 강한 두 다리로 일어설 수 있는 그런 군대를 모으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성령의 열매를 소유한 자들은 야훼 하나님의 군대에 소속될 것이고, 열매를 소유하지 못한 이들은 (기드온의 이야기에 등장했던 이들처럼) 다시금 (야훼 하나님의 집이 아닌) 자기의 집으로 되돌아 가게 될 것이다.


|  구원은 이와 같다.

전지전능하신 분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혼자서 쌩고생을 다해 밥상을 차려주고, 게다가 나는 입만 벌리고 있으면 알아서 밥까지 떠먹여 주는 그런 공짜 도시락이 아니다.


제갈량의 계책이 없다면 관우와 장비의 싸움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승리를 거머쥘 수 있는 계략이 있었기에 관우와 장비의 싸움이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던 것과 같다. 삼국지의 제갈량처럼 주님은 매우 훌륭한 계획을 내게 알려주신다. 나는 그 계획에 따라 출전을 하고 칼을 쥔 손에 물집이 터져 피가 흐를지라도 열심을 내어 싸운다. 이같은 서로의 합력이 있을 때, 내 삶은 비로서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8)


여러분.

깨어있는 교회(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 자신의 구원이 확실하다고 여기시는 분이 있다면, 다시금 설명해 주시길 바랍니다. 백신을 접종받지 않았다는 그 사실만으로 자신은 구원받기에 합당한 자로 간주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WCC 등의 종교통합에 동의하지 않았거나 혹은 소속된 교회(공동체)의 성도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 자신은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죄를 짓지 않은 것으로 의롭게 될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faith)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롬3:28)


우리가 신뢰(faith)해야 할 그 분이 내게 주시는 믿음(faith), 곧 그분의 음성(voice)을 듣고 그의 뜻대로 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에게 의롭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  여러분, 이는 중요한 것입니다.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이는, 실제로 나를 사랑해야만 합니다. 이 세상에서 필요한 이는 '이웃을 미워하지 않는 자'가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는 자'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이것을 위해 반드시 야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라며 축복합니다.

모든 것은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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