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받지 않은 자가 예배에 참석하는 시대


우리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예배는 귀하고 소중한 것이며 마땅히 행해야 할 계명 그 자체다.
그래서 누구든 예배를 지키겠다고 말한다. 심지어 필자 조차도.


그런데 그토록 귀하고 소중한 시공간에 소위 개나 소나 다 참석할 수 있단 말인가?






| 최고의 국가 안보회의가 열리는 자리다.

그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아무나 참석할 수 있도록 그 회의장의 문은 활짝 열려 있을까? 두 눈을 부릅 뜨고 사방을 둘러 보라. 가장 귀중한 것을 누구에게나 허용하는 곳이 있는지.


교회(공동체)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할 때, 정말 아무나 들어오라고 쌍손을 들고 모두를 환영하는지 궁금하다. 심지어 담임 목회자를 향해 혹독히 비난과 조소를 날리는 원수같은 자에게도 예배의 문을 활짝 열어줄 수 있을까?





성경은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누구나 예배에 오는 게 아니라고. 이같은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거론된 단어는 '택함받은 자'다. 홍해를 지나 광야로 들어갈 수 있는 이들은 오로지 '허락된 자들'뿐이었다. 


우리가 의미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누구든지'라는 단어와 '택함받은 자'의 단어에 차이는 없는 것일까?
whoeverchoosen people에 명확하게 드러나는 어떤 구분은 없나?


서울대학교 학생이라는 자격은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든지'(whoever) 자격이 있다. 그래서 이러한 자격을 지닌 이를 우리는 '후보자'(candidate)라고 말한다. 누구든 서울대학교의 학생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하지만 실제 서울대학교의 학생이라는 자격은 '누구나'에게 주어지지 않고, 열심을 다해 학창시절을 살아온 몇 몇 학생들에게만 허락된다. 곧 자신의 학창시절을 헛되게 보내지 않은 그런 이들에게만 선택적으로 자격이 부여된다. 따라서 실제 서울대학교의 학생이라는 자격은 '택함받은 자'(chooosen people)에게만 허락된다.


이처럼 예배라는 것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아무나 예배에 참석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세상의 모든 것보다 귀하고 가치있는 야훼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그 시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에, '출입 자격'은 분명히 존재했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그 출입 자격을 분명히 보아야만 한다.



일류 기업에 입사하고 싶다.

입사원서를 제출하는 것은 '누구나'(whoever) 가능하다.
제출된 입사원서는 선별된다. 허다한 지원자들 가운데 극히 일부에 해당되는 이들만이 그렇게 1차 선별된다. 1차 선별된 이들은 자신의 이력을 제시한다.

이력이란 오늘의 자신이 있기까지, 혹은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던 과거의 행위들을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제출된 이력서는 분명히 '참되다'는 것을 전제로 오늘의 나 자신은 그렇게 제출된 이력서 만으로 판단될 수 있다.

회사가 원하는 과거의 삶을 살아온 이는 제 2차 후보군 내지는 최종 합격자로 선택된다. 하지만 회사가 원하는 과거의 삶을 살지 못한 이들에게는 어떠한 관문(gate)도 열리지 않는다.



참된 예배의 관문은 이렇다.

나의 생활이 펼쳐졌던 일상에서 어떻게 살았는지에 따라 예배에 참석하겠다고 찾아온 이에게 출입문이 열린다거나 혹은 출입문이 견고하게 닫힌 채 그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예배는 중요하다.
하지만 개나 소나 참석하는 모든 이들에게 예배의 시공간으로 들어올 수 있는 출입문이 열려있는 건 아니란 뜻이다. 신기하게도 늘 일상이 펼쳐지는데, 그 일상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예배의 시공간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예배의 시공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그 출입문의 열쇠는 '일상의 삶 속'에 숨겨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이 일상의 삶을 믿는 이들에게 허락하시는 야훼 하나님의 크나큰 배려가 아닐까 싶다.
따라서 우리는 일상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으리라 본다.




오늘 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내 욕심만 채우고자 주변의 아픔을 외면하면서 살아가는 게 좋을지 혹은 '내가 받고 싶은데로 타인에게 먼저 베푼다'는 마음으로 내 이웃들을 먼저 챙기고 그들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는 게 좋을지.

우리 스스로가 한 번 정도 판단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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