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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는 자] 그가 여러분에게 집중하는 부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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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속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에 이구동성으로 동의한다. 믿음의 공동체를 떠나, 사회 전반적으로도 사기 사건 등에 관해서는 "예방"에 온 힘을 쏟고 있다. 그런데도 사기 사건은 더욱 창골해져만 간다. 그리고 수법은 더욱 다양하고 악랄해지기 까지 한다. 한 마술사가 약간의 "TIP"을 공개했다. 마술이란 본시 "속이는 기술"이라는 것 즈음은 잘 알 것이다. 그런데 요즘의 마술을 보라. 보란 듯이 더욱 눈 앞에 다가와서 행한다. 그 이유를 알아보자. 한 마술사가 자원자를 모와 놓고 마술 하나를 보여주겠다고 말한다. youtube (below all) 자신이 오랫동안 연구해 온 것인데, 사람을 속이는 것 과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네들이 "속이는 기술"에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깨우쳐 준다. 우리들은 지식인이라 자부한다. 특히 고학력자들이 많은 한국인들은 더더욱. 하지만 마술사는 방송을 통해 자신감 있게 말한다. 사람이 속임수에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자신의 속임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당당하게 제시하고 있다.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 또는 다른 곳을 보게 하는 것 이라고. 우리 신앙 공동체에 속한 이들은 이 부분에서 많이들 오해하곤 한다. 죄를 이기겠다고 말하면서, 그들의 생각이나 시선은 항상 "저 놈의 죄를 어떻게 이길까?" 또는 "내가 저 죄를 짓지 않아야 해. 저놈만 조심하면 되!"라는 식으로 항상 죄 만을 바라본다. 사단은 우리가 죄를 짓게 하는 것에 관심이 있을까? 아니면 야훼 하나님을 향하려는 우리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자 하는데 더 관심이 있을까? 속임수가 펼쳐지는 대부분의 상황은 "지극히 간단"한 상황이다. 관용어구 Now you see me, Now you don't"에서 유래한 말 " No

호두의 교훈(비유)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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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알과 전쟁 전쟁을 뜻하는 히브리 단어 מלחמה(milchamah)은 호두알과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 pixabay 호두알은 단단한 껍질과 함께 부드러운 호두 알맹이로 이루어져 있다. 단단한 껍질은 부드러운 호두 알맹이를 감싼다. 이러한 구조를 전쟁이라는 단어에 적용해 보면,  단단한 껍질은 mah(מה; 만나)  그 안의 호두 알맹이는 lechem(לחם ; 빵) 에 속한다. 호두알의 껍질은 먹어도 소화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 생명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호두 알맹이는 다르다. 부드러워서 먹으면 소화가 되어 그 속에 감춰져 있던 영양 성분을 흡수할 수 있다. 이는 우리의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해 준다. 전쟁의 표면적인 모습 그대로를 본다면, 우리들이 쉽사리 받아 들일 수 그런 상황이 아니다. 어느 누구도 소화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생명보다는 죽음을 안겨준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요6:49)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 보면 우리를 단련하고 생명을 더 풍성하게 하는 생명의 양식이 숨겨져 있다.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요6:50) 그래서 이런 전쟁은 우리의 전쟁이 아니라 "진리의 전쟁"을 의미한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10:34) 그런데 이런 전쟁 곧 진리의 전쟁은 어디에서 펼쳐질까요? 그것은 다름아닌 "율법"(계명)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행15:10) 율법은 유대인 조차도 능히 메지 못하는 멍에다. 하물며 이방인은 오죽하겠는가? 그런데 예슈아는 "가벼운 멍에 곧 능히 맬 수 있는 멍에"를 주시겠다고 강조하여 말씀하시니 율법을 아는 자들과 정면으로 대

연말연시 회식을 하시는 당신께 여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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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연말연시가 다가온다. 경기침체로 인해 다소 침울한 분위기가 감돌지만, 그래도 한 해 수고하셨음을 서로간에 격려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수 있기를 바라며 소망한다. 그러한 기회는 주로 회식이라는 자리를 통해서 주어지곤 한다. 그럼 질문 한 가지만 해 보기로 하자. 두 식당이 있다. (식약처의 나트륨 저감화 정책에 준하는) 저염식 식단을 제공하는 식당 과 그저 맛있는 식당 이다. 회식을 가고자 하는 여러분은 어떤 곳을 선호하시겠는가? 답변은 듣지 않더라도 서로간에 공감하는 바가 있을 줄 안다. 시중에는 무수히 많은 상점들이 즐비하다. 그 중에는 건강을 위주로 건강식단만을 고집하며 준비하는 음식점들도 끼어 있다. 필자가 사는 곳에도 "흑마늘 육수를 이용한 칼국수"라는 건강식을 제공하는 식당이 있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삼겹살 집들이 즐비하다. 점심 식사 때나 저녁 식사때 그 근처를 지나면 의례 눈에 띄는게 있다. 건강식 식당과 그저 즐겁게 맛을 즐기자는 식당을 찾은 각각의 손님들 모습을. 건강식 식당은 늘 한산하다. 손님이 겨우 한 둘 있을 뿐, 맛집으로 소문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단골은 있지만)그곳을 선호하는 무리는 없다. 대신 맛있으면 된다는 식의 식당에는 인산인해를 이룬다. 여러분. 정부의 정책을 비난하려는 바는 아니지만, 저염식 식단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가 무엇인지는 우리가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염식은 건강한 식단이라는 홍보와 함께 국민 대부분의 저염식 식단을 권장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궁금증을 일으켜볼 필요가 있다. "과연 가정의 의료지출비는 매년 줄어들고 있는지 혹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지?" 에 대해서.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제시한 질병관리본부의 '2014 국민건강통계'(2016년 1월 15일 발표자료)를 보면 한국인의 1일 평균 나트륨 섭취량은 5257mg을 섭취하던 2005년에 비해 26.0% 감소한 3890m

소변 보는 횟수로 알아보는 자신의 건강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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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사람마다 하루에 소변을 몇 회나 보는지 정해진 횟수는 없다. 다만 젊은이보다 나이드신 분들, 건강한 사람보다 허약한 사람이 더 빈번하게 소변을 본다. 소변 보는 회수를 어떻게 건강의 지표로 삼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자신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과학자나 학자들도 불가능하다. 오직 거울이라고 하는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이처럼 인체의 신비를 직접적으로 알고 있는 이는 없다. 그래서 인체의 신비를 알고자 하는 이들은 곤충이나 동물 등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고, 이렇게 얻어진 결과를 보는 그러한 간접적 방법을 통해서 인체의 신비를 가늠할 뿐이다. 소변과 건강의 연관성도 이와 같이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서 알아볼 수 있겠다. 봄철이 되면 모든 식물들이 왕성한 성장의 신호탄으로써 새 순을 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름이 되면 본격적으로 성장의 시기를 맞이한다. 이 무렵 성장에 필요한 미네랄을 얻기 위해 식물은 미네랄이 녹아 있는 땅 속의 수분을 뿌리를 통해 빨아들인다. 할 수만 있다면 많은 양의 수분을 빨아 들인다. 그래서 장마철에 많은 비가 내릴 지라도 나무가 무성한 산에서는 산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바로 식물들이 흡수하는 수분의 양이 많아서다. 가을이 되면서 식물들은 성장과 생장 등의 모든 일들을 서서히 마무리하면서 추운 겨울을 준비해 나간다. 일단 여름철 내내 흡수했던 대부분의 수분들을 방류하는 작업에 돌입한다. 겨울철 (식이섬유)세포들이 동파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세포들 속에 들어 있던 수분을 세포 밖 땅 속으로 배출한다. 최소한의 수분만을 남겨 놓은 채, 자신의 몸 속에는 더 이상 수분이 남지 않게 만든다. 이것이 "흘러가는 세월"을 이겨내는 나무의 모습이다. 이 과정을 지나면 나무의 나이는 한 살이 더 많아지고, 그가 살아온 나날은 더 늘어난다.  몸에서 수분(물)이 빠져 나

내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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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앞에 빙산이 있다. pixabay 당신의 눈은 무엇을 보는가? Fig Tree Revolution 수면 위에 떠 오른 빙산의 일각을 보는가? 아니면 수면 아래에 감춰져 있는 부분을 보는가? 빙산이 당신에게 다가 올 때,  9%에 달하는 보이는 부분만으로 계획을 세우면 여러분은 망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91%의 부분으로 계획을 세울 때에 생명을 얻는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삼상17:47b)이요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엡6:12)이다. 여러분. 상황이 어렵다하여 보이는 부분에 집중하시면 안 됩니다. 보이는 부분에 집중하면 할 수록 당신의 배는 한낯 "타이타닉"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에 집중하여 설계하면  "구원의 방주"를 얻게 되실 것입니다. 그런 여러분이 되시길 바라며 축복합니다.

많은 자들 중의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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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뜻은 넓은 길을 함께 걷고 있는 많은 이들 중의 한 사람(a man)을 가리키지 않는다. 월리를 찾아서(where's waldo) by youtube 주님은 그 넓은 길에서 가던 길을 돌이킬 수 있는 특별한 사람(the man)을 원하신다. pixabay 자신만의 유일무이한 삶, 즉 좁은 길을 택하여 갈 수 있는 the man을 기다리신다. 그런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바라며 축복합니다.

0.1%의 대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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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녀와 대화를 나눕니다. 부모입장에서 "대화"라는 단어를 서슴치 않고 사용합니다. "나는 내 자녀와 대화를 합니다." 그런데 그 자녀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현시대를 사는 자녀들의 대부분은 말합니다. "저희 집에서는 대화가 안 되요!" 부모는 대화를 한다고 말하는데 반해 자녀는 대화가 이루어지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게 어떤 상황인가? 부모가 생각하는 대화의 개념과 자녀가 생각하는 대화의 개념이 다른 것은 아닐까? 대부분의 기획 방송은 당초 의도에 따라 촬영하는게 기본이다. 그러나 의도된 기획일지라도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점은 서로가 부인하지 못하리라 본다. "대화"에 대한 우리네들의 생각을 나눠볼 수 있으면 좋겠다. EBS에서 기획적으로 "부모와 자녀"를 한 자리에 모왔다. youtube (below all) 상위 0.1%에 달하는 학생과 그 부모집단, 보통 수준의 학생과 그 부모집단을 스튜디오에 불러 모왔다. 그리고 그 두 집단간의 대화 방식을 살펴보았다. 보통 수준의 학생과 그 부모집단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의 양상을 살펴보았더니, (모든 부모가 이렇지는 않지만, 약간의 의도 안에서 진행된 내용으로) 0.1% 수준의 학생과 그 부모집단 간의 대화에 눈에 띄는 차이를 보였다. 먼저 부모와 대화를 마친 학생들의 표정에서 차이가 난다. 표정이 어둡다. 표정이 밝다. 대화 이후의 표정 차이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자신의 의견 또는 생각을 부모로부터 인정을 받았는지 혹은 묵살되었는지의 차이다. 물론 평소의 모습이 있었기에, 현재 나타나는 자녀의 모습을 지레 짐작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만일 과거의 모습으로 현재의 모든 모습을 판단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에는 "변화"가 존재할 수 없다. 변화는 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