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 이스라엘 백성이 승리하게 되는 그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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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의 회복] 이스라엘 백성이 승리하게 되는 그 때는? 서울 하늘 아래 살면서, 해가 어느 때 떠오르는 지 정확한 시간을 아는 이는 한 명도 없다. 해가 떠 오르자 해가 떠 올랐다는 것을 알게 될 뿐. 하지만 해가 떠오르는 시기는 안다. 새벽이 끝나고 아침이 시작될 그 즈음에 해가 떠오른다는 것을. 그래서 해가 떠 오름으로써 새벽과 아침은 극명하게 나뉠 것이라는 것도 안다. 물론 극명하게 나뉠 그 시간은 모르지만. 이와 같이 이스라엘이 어느 시대, 어느 순간에 회복될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어느 시기에 이루어질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한 종교 지도자가 있다. 그는 니고데모다. 그가 예슈아를 찾아 왔다. 유대 사회의 종교 지도자는 오늘날의 목회자 또는 신학자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신학적 전문성이 뛰어난 이들이다. 그런데 그가 예슈아를 찾아 온 것이다. '채워지지 않은 그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서다. 그가 예슈아를 찾아와 어떤 율법 학자도 들려주지 못하는 '깨달음'을 전수해 준다. 어떤 율법 학자도 '율법을 온전히 지켜 행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알려줄 수 없었건만, 니도데모는 '율법을 온전히 지켜 행할 수 있는 그 삶의 방식'을 예슈아로부터 직접 듣게 된다. 백성들이 오면서 이르기를  " 자, 가자. 우리 모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나님이 계신 성전으로 어서 올라가자. " "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님의 길을 가르치실 것이니,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길을 따르자 " 할 것이다.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며, 주님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온다.  (사2:3.새번역) 주님이 직접 가르쳐 주시니, 주님이 뜻하신 그 삶의 길이 어떠한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내야 온전히 살아낼 수 있겠는지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니고데모는 바로 사2:3의 말씀이 예언했던 그 상황 속에 있으며, 이사야(BC 745-695년) 선지자가 이를 기록...

신앙을 바로 알자. 공짜 도시락은 없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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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큐의 경제학에서 소개하는 '경제학 기본 원리' 가운데 '공짜 도시락은 없다'는 말이 있다. 누군가의 행동에는 반드시 그 댓가를 바라는 바가 함께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한다는 뜻이다. 이는 성경에서 이미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던 내용이다. 다만 성경에서 은혜만을 강조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공짜'라는 인식이 강해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말한다. 공짜가 없다고. 성경의 어느 부분이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을까? 성경은, 그리고 예슈아는 율법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7:12) 이 의미가 어떤 의미일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12:3) 누군가가 아브라함을 축복하면, 그는 반드시 그 댓가를 받는다. 축복으로. 반면 누군가 아브라함을 저주한다. 그러면 그도 역시 반드시 댓가를 받는다. 저주로. 축복과 저주를 받게 된 그 이유는 그 흔한 공짜 때문이 아니란 사실을 이처럼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이 두 경우를 나누어 가리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6:23) 신앙 생활 가운데 우리네들이 가장 오해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바가 있는데, 그것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주님이 은혜를 베푸시면 그 은혜를 받아서 그냥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가 해야 할 마땅한 일을 과연 어느 누가 처리해야 옳을까? 천사가? 아니면 성경 말씀대로 신실하게 살아가는 어떤 성도님이? " 나는 할 만큼 다 했는데, 안 돼네요. " " 주님께 모든 것을 다 맡기고 저는 이제 손을 뗄테니, 주님이 알아서 처리해 주세요 " 라...

내가 포기하지 않는 이유; 이것이 나의 삶, 나의 고백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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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죽었다고 생각되어 화분을 건물 바깥 계단에 내 놓았다. 날 풀리면 버리기 위해서. ​ 그런데 날이 풀리자 새 순이 나는 게 아닌가! 우리 모두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나무가 생명의 싹을 피운 것이다. 우리는 황급히 좋은 황토를 가져다 화분 위에 뿌려주었고, 수액까지 넣어 주었다. ​ 모두가 인정했었다. 그 나무는 죽었다고. 하지만 화분 속 그 나무는 혹독한 그 추위를 묵묵히 홀로 견뎌냈다. ​ 그리고 모두의 예상과 다르게 파릇파릇한 새싹을 피워냄으로써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화분속 그 나무는 그렇게 스스로 증명해 보였다. ​ 이것은 어쩌면 인생과 같아 보인다. 게다가 신앙의 열매가 어떤 것인지를 내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는 좋은 교훈인 듯싶다. ​ 모두가 죽었다고, 모두가 이젠 끝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절망적인 순간일지라도, 야훼께서 끝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시면 그건 끝난 것이 아니라 는 그 사실을 나는 이렇게 배운다. ​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이 비록 힘들고 지칠 지라도 포기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야훼께서 포기하지 않기 때문 입니다. ​ 나는 그런 야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기에 오늘 다시금 일어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을 친히 뵙게 될 그날까지 나의 삶이되게 하시고 나의 고백이 되게 하옵소서. Because YHVH don't give up, I will not give up.

[어른에게 들려주는 이솝우화] 북풍과 태양의 내기 시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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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상사로서 리더쉽을 발휘하고자 할 때, 어떻게 하는 게 좋은 모습이 될 수 있을까? 부모로서 자녀에게 좋은 모습을 갖게 하려 하고자 할 때, 어떻게 하는 게 좋은 모습일까? 이솝우화는 그런 물음에 답을 얻지 못한 어른 또는 직장 상사들에게 좋은 답을 주는 것같다. 북풍과 태양의 이야기는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이솝우화 가운데 하나다. 북풍과 태양은 서로의 강함을 비교하듯 경쟁하는 사이다. 그런 그들 앞에 한 나그네가 길을 가고 있다. 둘은 누가 먼저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지 내기하자고 했다.  먼저 북풍이 시도를 한다. 있는 힘껏 바람을 불어 강제로 나그네의 외투를 벗겨내려 했다. 그러나 바람이 강하면 강할수록 나그네는 점점 더 옷을 꽁꽁 여미는 게 아닌가. 결국 기진맥진한 북풍은 포기하고 태양에게 차례를 넘겼다. 태양은 북풍과 달랐다. 그저 따스한 햇볕을 내리쬐어 주었다. 그러자 더워진 나그네는 스스로 외투를 하나씩 벗는 게 아니겠는가. 이내 시합은 태양이 이겼다. 우화의 내용은 매우 간단하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조차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지혜의 크기와 삶의 노하우의 깊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이는 과연 몇이나 될까 반문하고 싶다. 흔히들 의중이 있는 내 뜻대로 누군가가 바뀌길 바랄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 그에 대한 처세술(??)을 깨닫게 된다. 강제적 또는 강압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상대가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나는 권위와 힘을 앞세워 그를 변화시키려 한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의 계획과 시도는 처참하게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게 우화의 교훈이다. 하지만 그가 스스로 바뀔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변화되기까지 인내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에게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깨달음을 우화는 담고 있다. 부모가 자녀를 대할 때,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을 대할 때,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이웃을 대할 때 등등. 우리들 삶에서 매우 다양한 경우들...

남자의 자유, 남편의 쉼 그리고 남자에 대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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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출근하면 퇴근할 때까지 명령을 듣고 그 명령에 따라 행동한다. 그리고 퇴근하면 집에서 아내의 명령을 듣고 그 명령에 따라 행동한다. 그리고 잠을 자고 일어나면 또다시 출근하면 회사에서 그리고 퇴근하면 집에서 명령을 듣고 그 명령대로 따라 행동하는 삶을 살아간다. efinancialcareers 이때 남자에게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느냐고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30분만 쉬고 운동하려는데, 강제로 5시간 동안을 빈둥거리며 쉬라고 누군가가 내게 명령을 내린다면 어떨까? 5시간 동안 빈둥거리는 것은 사람을 매우 곤혹스럽게 만든다. 또한 8시간의 잠을 청하고 싶은데 3시간만 잠을 자게 하고 나머지는 고된 일을 시킨다. 이것 역시 몹시 힘들다. 잠을 잔다고 해도 내 뜻대로 결정할 수 없다면, 그리고 쉰다고 해도 내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쉬는 것이 아니다. 내 소유물에 대해 내가 마음껏 처분할 수 있는 상태 또는 결정권이 있을 때, 그 사실이 진정한 자유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잠자고 싶은 만큼 잠을 자고, 쉬고 싶은 만큼 쉬는 것. 그리고 일하고 싶은 만큼 일하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우선순위를 두고 자신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는 것. 그 모든 것들을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게 자유인 셈이다. DTNext 그런데 남자는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자신의 의지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자유를 누려본 적이 없다고 느끼게 된다. 따라서 그는 회사에서도 그리고 집에서도 진정으로 쉼을 얻어본 적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는 이는 자기 혼자서 조용한 곳을 향해 길을 떠나고자 할 것이다. 왜? 그곳에서 만큼은 자기가 마음먹은데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유일한 곳 이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그리고 남편들이 가족 모두가 잠든 시간에 홀로 깨어있는 이유도 바로 그런 이유가 많다. 그래서 남자들의 쉼은 편히 눕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기 혼자서 무언가를 결정하고, 그렇게 ...

다윗의 절묘한 생각. 야훼께 사랑받을 수 밖에 없는 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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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스 칙령에 의해 예루살렘에 성전 재건을 시작하던 유다 총독 스룹바벨은 이를 시기하는 무리들의 방해로 인하여 성전재건은 중단된다. 그때가 고레스의 아들 아닥사스다 왕캄비세스 2세 때의 일이다. ☞ 고레스, 다리오 그리고 아닥사스다와 아하수에로 왕의 연대기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 Ezra 4:5 그후 학개와 스가랴 선자를 통해 성전 재건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야훼 하나님의 뜻이 전해진다. 다리오 왕 이 년 여섯째 달 초하루에 예언자 학개가 여호와의 말씀을 스알디엘의 아들이며 유다 총독인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이며 대제사장인 여호수아에게 전했습니다. 학1:1.쉬운성경 이때 야훼께서 하신 말씀은 다음과 같다. 예언자 학개가 여호와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 성전이 아직도 폐허로 남아 있는데 너희가 그렇게 멋진 집에서 사는 것이 옳으냐?” 학1:3~4.쉬운성경 야훼 하나님의 지적하심에 대해 이해가 되는가? 다윗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다윗이 자기 궁전에서 살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그는 예언자 나단에게 '보시오. 나는 백향목 궁전에 살고 있는데 여호와의 법궤는 천막 속에 있소!' 하였다 역대기상 17:1 자신은 백향목 궁전에 살고 있는데, 야훼 하나님(의 법궤)은 천막에 있음을 몹시 안타까워 한다. 나는 깨끗한 곳에서 편안하고 즐겁게 사는 데, 야훼 하나님이 임하신다는 그 예배당에는 온갖 음식 쓰레기며 쓰다남은 종이 쓰레기들을 아무렇지 않게 버리고 나온다.  청결은 내게 필요하고, 내가 은혜를 받아야 하는 그 순간에만 깨끗하면 되었다. 내가 일어서서 떠나는 그곳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오로지 내가 은혜를 받고 설교를 들었다는 그 자체만이 중요할 뿐이다. 이처럼 생각하고서, 세상에서 조차 반드시 지켜 행해야 할 정리정돈 조차 예배처소를 찾는 그 순간만큼은 망각해 버리는 이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 내 아버지의 처소와 객이 머무른 곳 그랬더니 우리들...

씨뿌리는 비유에서 드는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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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뿌리는 비유는 흔히들 대부분의 성도들이 익히 잘 아는 성경 내용이다. 그래서 특별하게 부연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혹은 설교를 추가적으로 듣지 않는다 할지라도 대부분 서운한 마음을 갖지 않을 내용이다. 이미 충분히 아는 내용들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씨뿌리는 비유막4:1~20에 대한 설교를 듣던 중 한 가지 의문스런 생각이 떠올랐다. 오늘은 그 내용을 함께 고민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 씨를 뿌렸는데, 엉뚱한 곳에 떨어졌다.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막4:3~8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 중학교 과정까지 시골에서 자랐다. 농사일을 본업으로 삼지 않았던 아버지였지만, 그대로 조금의 밭을 일구신 적은 있었다. 농사일을 거두는 상황에서 씨앗을 뿌려야 할 상황이 있다. 그때 손에 잡히는 대로 씨앗을 사방에 마구 뿌려대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게 될까? 그런 일을 해 본 적이 없어서 경험담을 들려줄 순 없지만, 작대기로 흠씬 두둘겨 맞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속 씨를 뿌리는 자는 신중한 태도로 씨앗을 뿌리지 않았나 보다. 씨를 뿌리는 자는 씨가 잘 자랄 수 있는 곳에 조심스럽게 뿌린다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길가와 돌밭 그리고 가시떨기 사이에 씨가 뿌려진다는 그 자체를 용납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나 시골에서 직접 농사를 짓고 계시는 나이드신 분들의 경우라면, 이같은 일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아니 되는 일이란 뜻이다. 하지만 성경에는 버젓이 기록되어 있다. 씨를 뿌렸더니 4 종류의 땅에 뿌려졌다고. |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에 합당한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씨 뿌리는 자가 바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바보가 아니라면 분명히 의도된 행동이지 않겠느냐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럼 의도된 행동이라고 가정해 보자면, 씨 뿌리는 자가 얼만큼 신중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