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다르다면 대화의 기회를 주지 않아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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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다르면 그에게는 말 할 기회를 주지 않아도 되는건가? 생각이 다르면 그 사람의 생각은 들어줄 가치가 없는 건가? 생각이 다르면 그 사람은 인격적인 대우를 받을 자격이 없는 걸까?  흔히들 우리는 '자격없는 나'라는 신앙고백을 즐겨한다. 흔히들 우리는 ''벌레만도 못한 나'라는 신앙고백을 즐겨 사용한다. 자격도 없었고, 인간적 대우조차 받을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그런 우리 자신을 위해 예슈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고, 우리는 눈물을 흘리면서 말한다. 그런데 정작 내 앞에 단지 ''나와 생각이 다른 자'가 있을 뿐인데, 우리는 그의 생각을 들어줄 마음이 없다. 단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러한 거부를 당당하게 하는 우리는 과연 무엇인가? 히틀러의 파시즘은 반공주의를 기반으로 삼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공산주의에 전혀 뒤지지 않는 비인격적인 행보를 자행해 왔었다. 그런 파시즘의 모습 가운데 대표적인 비인격적 행보는 바로 '생각이 다른 자는 철저히 파멸시키는 것'이었다. | 니체는 그런 사상들의 위험성을 미리 알고 우리들에게 경고를 했다. 젊은이를 타락 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 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을 존경하라 고 가르치는 것 이다."  -니체. ※ 교육의 중요성과 교육의 나아갈 목표가 무엇인지를 인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치를 일삼는 곳에서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가 싶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공동체) 안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  대화란 무엇인가? 생각이 다른 존재들이 서로를 인격적인 존재로 여겨주는 분위기 안에서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표현하는 것이지 않겠는가? |  공감은 왜 필요하겠는가? 서로 다른 생각을 기초로 다져진 마음을 가치있는 것으로 간주하였기에, 가치있는 것들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공감하는 마음이지 않겠는가? 폐망의 종말을 마지한 세상의 군주들을 보면,...

율법이 두 증인을 요구하는 이유. 예언과 성취는 그 두 증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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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의 아들 유리가 왕이 되어 유리명왕이던 시절의 이야기다. 유리명왕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태자 도절이 죽고 둘째 아들 해명만이 있을 때였다. 당시 주변 국이었던 황룡국 왕이 고구려의 유리명왕에게 활을 보낸 일이 있었다. 이에 해명태자는 활을 부셔 버리게 되는데 이 일로 인하여 황룡국 왕의 체면은 땅에 떨어지고 만다. 유리명왕은 해명태자의 경거망동한 행동이 자칫 주변 국과의 전쟁의 빌미가 될 수 있겠다 여기고서 황룡국 왕에게 해명태자를 보내게 된다. 그리고 황룡국 왕이 해명태자를 죽이라는 서한을 보낸다. 하지만 황룡국의 왕 역시 전쟁이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두려워 했었고, 해명태자를 직접 만나면서 아까운 인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그를 극진히 대접한 후 고구려로 되돌려 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리명왕은 해명태자에게 자결하라는 다소 황당한 어명을 내린다. 자신의 어리석은 힘만을 믿고 이웃 나라와 원한을 샀다는 이유를 제시하면서. 해명태자는 자신의 아버지 유리명왕에게 다음과 같은 변론을 한다. " 황룡국의 활을 부러뜨린 것은 , 황룡국이 고구려를 무시한 것에 분노하여   행한 것이지 , 불효를 저지를 생각은 없었습니다 . " " 그런데 부왕이신 유리명왕께서 , 뜻밖에 화를 내시며 , 자살을 하라 하시니 , 죽으라면 죽겠습니다 . " 해명태자의 변론에도 불구하고 유리명왕의 분은 사그러 들지 않고 계속해서 자결을 명하자, 해명태자는 21세의 나이에 스스로 자신의 창에 몸을 던져 자결을 하게 된다. |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해명태자가 화살을 부러뜨리기 전에 먼저 충분한 설명을 했다면 어땠을까? 즉 충분한 이유를 설명한 후에 분을 표출하면서 황룡국 왕의 화살을 부러뜨렸더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유리명왕은 해명태자에게 자결을 명했을까? 충분한 설명이 먼저 요구되고, 이를 통해 유리명왕이 납득할 수 있었더라면 화살을 부러뜨리는 해명태자의 행동은 '선한 것 또는 올바른 행동...

[이독치독] 말라리아로 매독을 치료한 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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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4년 나폴리의 페르디난도 1세가 서거하자 나폴리 왕국의 왕위에 대한 앙주 가문의 승계를 명분으로 프랑스의 샤를 8세는 25,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이탈리아를 침공하게 된다.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콘도티에로 군대는 샤를 8세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기엔 너무 무능력했기에, 몇 달에 걸쳐 프랑스 군대는 큰 저항없이 이탈리아를 통과하여 나폴리를 정복할 수 있었다.  나폴리를 정복한 샤를 8세의 프랑스군은 그야말로 극치의 약탈을 일삼았는데, 그 가운데 대규모의 성범죄를 일으켰다. 그 사건으로 인하여 매독이 유럽전역으로 퍼져 나가는 계기가 마련되었고,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 인구의 15%가 매독환자였을 정도로 유럽에서만 약 400년 간 1000만 명 이상이 매독으로 사망했을 만큼 인류를 위협했던 가장 무서운 질병 가운데 하나였다. 우리들이 익히 잘 아는 니체, 슈베르트, 톨스토이, 베토벤 등도 매독으로 고생했다는 것을 그들의 일화를 통해 알 수 있다. 하지만 성병으로만 국한되지 않는 이상한 매독이 있었으니, 매독에 감염된 후 약 15년이 경과하는 시점에서 발병하는 질병이 있었다. 신경계로 전이된 매독에 의해 뇌가 손상을 입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운동 장애가 일어날 수 있고 판단력이나 기억력 등이 저하도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서 결국에는 마비를 일으키고 더 심해질 경우 치매에 이르게 하는 질병이다. 발병 후 약 3년 이후엔 죽음에 이르는 매우 위험한 질병으로서 특히나 30~45세 사이의 한창 때의 남성들 사이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었다.  그러던 중 오스트리아의 한 정신과 의사는 '정신신경성 매독 환자들이 열병에서 회복되는 과정에서 매독 관련한 상태가 호전된 사례'를 목격할 수 있었고, 이를 계기로 삼일열 말라리아에 감염된 환자로부터 (감염된) 피를 수혈받아 정신신경성 매독 환자 9명에게 그 피를 주입해 보았다. 당시 삼일열 말라리아는 퀴닌으로 언제든지 치료할 수 있는 질병으로서 다른 질병에 비해 비교적 무해한 질병으로 분...

사랑받고 싶어 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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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축복일까? 아니면 저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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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폴 사르트르. 196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였으나 스스로 수상을 거부했다고 한다. 인간은 자유라는 저주를 받았다 '실존주의란 무엇인가' by 장 폴 사르트르 | 우리는 자유에 대해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긴다. 그 자유를 위해 자신의 목숨조차 아끼지 않는다. 후대에게 자유를 넘겨주기 위해서. 하지만 자유란 축복인지 혹은 저주인지를 구분해야 할 때가 되었지 않았을까 싶다. 대한민국에 사상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을 때에는 '사회주의 관련 서적'들은 금서였고, 그러한 사상적 활동 역시 허락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민주화 바람이 일어나고 사상의 자유가 확산되면서 대학가에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사회주의 사상의 확산이 급속도로 퍼졌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대한민국 한 폭판에서 꿈에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 되었다. 2018.12.08 연합뉴스 2020.01.05 한국경제 사상의 자유는 개인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반길 만한 희소식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 희소식을 기뻐하던 때가 얼마되지  않은 가운데 이제는 어느덧 사상의 자유를 걱정해야 하는 시국에 이르렀다. 자유는 축복일까? 아니면 저주일까? | 자유는 소중하다. 하지만 나를 타락하게 만드는 주된 요인이다. 자유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방대해지면, 그 순간 '오만'(교만)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그 결과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자유의 시대는 그 순간부터 오만한 자의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곳은 바로 지옥이다. | 너무나 사랑하기에 우리는 버려야 한다. 자유는 속박된 곳에서 아름다워진다. 너무나 이율배반적인 명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명제를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를 사랑하기에 우리가 행동해야 할 바는 단 한 가지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2 그렇다. 진정한 자유는 이렇듯 '누군가의 자녀...

굴뚝을 청소하던 두 사람 중 어느 누가 세수를 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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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은 본시 좁아서 성인은 청소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굴뚝을 청소하는 이들은 몸집이 작은 자 또는 어린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 한 젊은이가 유태인에 대하여 연구하려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그는 먼저 구약성서를 공부하고, 이어 유태인에 관한 많은 서적들을 탐독하였다. 그러나 그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므로, 유태인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과정에서 그는 유태인을 이해하려면 유태인의 생활 규범인 탈무드를 공부해야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젊은이는 어느날 유태교의 승려인 랍비를 찾아갔다. 랍비란 유태인에게는 스승이고,재판관이기도 하며,때로는 어버이가 되기도하는 매우 존경받는 존재이다. 랍비는 자기를 찾아온 젊은이게 '당신은 탈무드를 공부해 보겠다는 결심을 세운 모양이지만 아직 탈무드를 앞에 펼쳐 놓을 자격조차 없는 듯하오' 라는 말로 단정지어 말하였다. 하지만 젊은이는 쉽게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젊은이 " 그렇다면 저한테 탈무드를 공부할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한번 시험해 보고 결정해 주십시오." 젊은이의 간곡한 부탁에 랍비는 다음과 같이 물었다. 랍비 "두 아이들이 집에서 굴뚝 청소를 하게 되었소.그런데 두 아이 중 한 아이는 얼굴에 그을음을 잔뜩 묻히고 내려 왔는데,다른 아이는 얼굴이 말끔한 채 굴뚝에서 내려 왔소. 이 두 아이 중 누가 얼굴을 닦을 것이라고 생각하시오?" 젊은이는 너무 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였다. 젊은이 "그야 물론 얼굴이 더러운 아이가 씻겠죠." 젊은이의 대답을 예상이나 한 듯 랍비는 냉정하게 말하였다. 여기서 잠깐! 자신이 배움을 얻고자 하는 학자에게서 질문을 받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답변을 해야 할까? 답변을 하기에 앞서 우리가 답변을 해야 할 상대가 누구인지 부터 고민해 보는 게 우선이라 생각한다. 내가 인정하는 학자가 내게 질문했다라는 사실에서 출발하자는 뜻이다.  내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그런 정도의 학식과 경...

탈무드를 읽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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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무드는 법전이 아니다. 위키백과 하지만 법률이 있고 역사책도 아니다. 그럼에도 역사의 내용도 들어 있으며, 인명 사전이 아니지만 많은 인물들이 망라되어 있어서 마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백과사전과 같은 역할을 한다. 전권이 20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페이지 수는 12,000페이지에 이르며 그 안에 담겨진 단어 역시 250여 만개 이상에 이르는 그러면서 그 무게는 75킬로그램이나 나가는 방대한 책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탈무드는 저명한 정치인이나 철학자 내지는 저명한 인사들이 저술하지 않았다. 삶의 스승이요 재판장이라 여겨지는 #랍비 들에 의해 BC 500년 경부터 AD 500년 경에 이르기까지 자료수집과 열띤 토론 등을 통해 저술되었기에 종교, 문화, 도덕, 전통 등 생활의 모든 내용들이 망라된 채로 그 안에 담겨 있다. | 어느 누구도 탈무드를 '다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탈무드란 지식전달 만을 목적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다만 '어떻게 사는 것이 야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내는 것인가?'라고 하는 유대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대한 문제를 다룬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삶이란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모두 다르다. 그 사실 때문에 인간의 삶이 다양한 만큼 탈무드의 내용 역시 다양하지 않는 이상 탈무드의 내용이 유대인들의 삶 전부를 충족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탈무드가 오늘날까지 유대인은 물론 이방인들에게까지 널리 익혀지고 있는 이유는 다른데 있다. ​탈무드는 내용에서 훤히 볼 수 있는 액면 그대로의 삶의 방식을 제시하려는 게 아니다. 발단이 되는 사건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는 깊은 사고력 을 바탕으로, '각자의 수준에 따라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고, 그로 인하여 성경이 의도하는 삶을 살아낼 수 있다는 '원리적인 내용' (우화, 비유)을 전달하려 할 뿐이다. 그렇기에 액면 그대로의 이야기만을 듣길 좋아하는 이들은 탈무드 속에 담긴 깊은 깨달음에 절대로 도달할 수 없다. 하지만 깊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