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례의 비밀] 세례요한의 숨겨진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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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의 비밀] 세례요한의 숨겨진 비화 세례요한 세례를 베푸는 요한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럼 그는 왜 물로 세례를 베풀게 되었을까? Charisma News 그저 단순하게 "보내신 이가 물로 세례를 주라"고 말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만 생각한다면 너무나 무의미하지 않을까? 세례 요한은 로보트나 좀비가 아니다. 생각할 수 있고 자유의지를 발휘할 수 있는 인간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그가 납득할 수 있을 만한 목적의식(사명)"은 지녀야 하지 않을까? 요한복음은 성경을 읽고자 하는 시도가 있을 때,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성경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요한복음을 읽어본 이들이라면, 최소한 첫 장 만큼은 읽어보았으리라. 그런데 필자는 "흠정역"을 읽는 가운데,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사실로서 "세례요한이 세례를 베푸는 이유"를 읽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눈이 가리워져서 보지 못했던 것인데, 오늘에서야 보게 되는 것 같다. 요한복음 1장(흠정역) 31. 내가 그분을 알지 못하였으나 그분이 이스라엘에게 드러나야 하므 로 내가 와서 물로 침례를 주노라 , 하니라. And I knew him not: but that he should be made manifest to Israel , therefore am I come baptizing with water . 세례요한은 예슈아를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예슈아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증거하고자 하는데도 불구하고 "보여줄 수 없다"는 사실에 부딪히게 된다. 백 마디의 증거보다 한 번 보여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백문이 불여일견"의 말처럼. 세례요한의 말에는 이 모든 상황이 고스란이 녹아 들어가 있다. "그분이 이스라엘에게 드러나야 하기 때문에...." "그 이유 때문에..." "내가 와서 ...

군대 내의 성폭행 그리고 그 심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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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내의 성폭행 그리고 그 심각성 나라의 안위와 안정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뒤로 한체, 온 힘을 쏟는 이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군인"이라고 부른다.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자국의 국민들을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조성된 단체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토 방위"다. 국토 방위 임무는 남녀의 구분을 짓지 않고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국토 방위를 담당하는 그 순간 만큼은 "성적인 차이"가 고려되지 않는다는 것이지 않을까? 그런데 오늘 가슴 아픈 한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단독|사건플러스] '성폭행 대령' 체포 뒤엔..아픈 진실 (☞ 원문보기 ) 남성 상급자가 여성 하급자를 강제로 성폭행 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피해를 당한 여성 하급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성폭행이 단순한 해프닝 정도로 무마될 수 없음을 말해준다. 한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아 버릴 수 있는 악한 행위다. 그것도 국토 방위의 임무를 책임지겠다는 군부대 안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더욱 놀랍다. 군부대 만큼은 성폭행이 반드시 근절되어야 하겠다고 강조하고 싶다. 이성간에 이루어지는 성폭행과 아울러 동성간에 이루어지는 성폭행. 이 모두는  한 인생을 파괴하는 악한 행위다. 절대로 간과되어서도 아니 되며, 국토 방위의 임무를 담당하는 기관에서 묵과해서는 안 될 죄과다. 이러한 악은 일점일획도 허락하지 말아야 할 악행이다. 군대 내의 성폭행.

전쟁 위기 속의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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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위기감이 고조되면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이 있다. 그것은 금과 은의 시세다. 골드뱅킹가격조회 by 우리은행 골드뱅킹가격조회 ☞ 다시 보기   나라가 망할 경우 변하지 않는 재산은 금과 은이다. 반면 가격이 급격하게 하락하거나 혹은 아무런 쓸모가 없어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화폐(지폐)와 부동산이다. 나라의 주인이 바뀔 경우 그 땅을 소유하던 자의 기존 소유권은 인정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소유하고 있던 화폐(지폐)는 그저 그림이 그려진 종이일 뿐, 화폐제도가 바뀌기 때문에 아무런 쓸모가 없어진다. 고로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은 현명한 생각일까? 아니면 미련한 생각일까? 은행이나 증권사 등을 통해 투자를 하고, 그리하여 지폐로 된 현금을 많이 보유하는 것이 현명한 생각일까? 아니면 미련한 생각일까?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현명한 판단이라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고, 행여 나라의 주인이 바뀌는 판세가 형성된다면 그들의 가치는 소멸되고 남아있지 않게 될 것이다. 고로 그러한 것들은 헛된 것들임이 입증되는 시점이 되고, 그것들을 구하기 위하여 평생을 바친 인생은 헛된 삶을 산 인생이라 평가될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믿고 예슈아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자들에게 간곡히 바라는 바가 있다. 세상의 권세잡이 들이 물러나고, 다른 정권 즉 야훼 하나님의 정권이 이 땅에 임하게 될 때를 생각해 보라. 그때 여러분의 안위를 지켜줄 수 있는 "가치있는 것"은 무엇이 될까? 지폐? 부동산? 아니다. 정금(gold)과 같이 빛나는 신앙 뿐이다. 고난의 시기를 통하는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그 빛. 그런 빛을 발하는 자들 만이 바뀐 정권 아래에서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이다. 북한과 미국의 신경전이 극도로 예민해져 가는 시기입니다. 우리들의 마음까지도 흔들리기 쉬운 시기입니다. 아울러 9월 23일의 휴거설이 나도는 시기입니다. 무엇이...

지성소. 그곳은 어떤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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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소. 그곳은 어떤 곳일까? 예슈아께서 피를 흘리심으로 인하여 지성소로 향하는 곳이 열렸다. 지성소와 회막을 가로막고 있던 천(휘장)이 위에서 아랫 방향으로 찢어졌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고 숨을 거두시니라. 이에, 보라,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둘로 찢어지고... (마27:50-51.흠정역)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  naver blog 이는 곧 "야훼 하나님께서 직접 찢으셨음"을 의미한다. 휘장은 어느 누가 찢을 수 있는게 아니였다. 지성소로 들어가는 입구를 막기 위해 휘장을 치라고 명하신 이가, 역설적이지만 이제는 휘장을 찢으셨다. 이러한 찢어짐이 하늘에서부터 시작하여 땅에 이르러서도 그 찢어짐이 나타났으니 이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주기도문이 실체화된 장면이다.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10.20b). 예슈아의 죽으심이 하늘에서 의도되지 않았다면, 결코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처럼 사랑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다. 그래서 "내리사랑"이라고 표현 했을까? 주기도문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문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되시기를 바란다. 예슈아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지만, 예슈아 본인도 자신의 삶을 통해 그 문구를 친히 이루셨다. 이제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예슈아의 행하심은 우리들로 하여금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이끄셨다. 예슈아의 이런 은혜가 있기 이전에는 어느 누가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대제사장 단 한 명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몇 명이라구요?  전 세계를 통틀어서 "단 한 명". 오직 단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지성소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구제하는 일로 서로간에 다투게 된 초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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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하는 일로 서로간에 다투게 된 초대교회 초대 교회가 구제하는 일로 말미암아 서로 다른 의견을 내세우게 되고, 이로 인하여 분쟁으로 까지 번지게 된다. Calvary Chapel 그 무렵에 제자들의 수가 크게 늘어났는데 그리스말 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과부들이 날마다 주는 배급에서 빠지므로 히브리 사람들에게 불평을 터뜨리니라(행6:1. 흠정역) 무엇보다 먼저 너희가 교회에 함께 모일 때에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을 내가 듣고 부분적으로 그것을 믿노니(고전11:18. 흠정역) 초대 교회의 모습 속에서 나타난 분쟁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이해를 하려고 하고 있을까? 혹은 "분쟁"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눈에 보이지 않는 분쟁의 씨앗이 갖는 의미를 무시한 체) 그저 그들의 눈에 보이는 행위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초대 교회의 당시 상황을 잠시만 생각해 보자. 지금의 우리네들 처럼 하루 3끼의 식사를 온전히 할 수 있었을까? 누구나 나름대로의 깨끗한 의복과 집에서의 삶이 보장된 상황이었을까? 지금의 우리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고아와 과부"에 대한 성경의 내용이다.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슥7:10. 개역개정)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 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 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약1:27. 개역개정)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 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신26:12. 개역개정) 야고보서의 내용은 사뭇 그 구절을 읽는 이들에게 긴장감까지 줄 정도다.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자신을 세속으로부터 지켜 내는 것. 을 경건...

내 삶에 고난을 주신 야훼 하나님, 그리고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한 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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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고난을 주신 야훼 하나님, 그리고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한 아담 에스겔 46장 18 왕은 백성의 유산을 빼앗고 그들을 폭력으로 내쫓아서, 그들의 유산을 차지해서는 안 된다. 왕은 자신의 재산만을 떼어서, 자식들에게 유산으로 나누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내 백성 가운데서는 아무도, 자신의 재산을 잃고 멀리 흩어져 다니는 일이 없게 하여라." 대통령이 자원하여 거리를 청소한다. 보는 눈이 얼마가 되더라도 거리낌 하나 없이 당당하게 쓰레기를 주을 수 있다. 그러면 사람들은 "역시 대통령이야." "그는 머가 달라도 달라."  "늘 귀감이 되는 행동을 하셨지"  라는 말로 그의 자원하는 행함을 칭찬한다. 하지만 대통령의 행함을 보고서 자신의 삶에 도전을 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왜? 그의 가문은 본시 훌륭한 가문이기 때문이다. 그는 (본래 보통 사람과 다른) 슈퍼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행함에 견줄 수 있는 보통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자원하여 쓰레기를 줍는 것은 어느 누구도 할 수 없고, 오직 대통령 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그런 난위도 있는 일이다. 그의 모습을 만천하가 보았을 지라도, 어느 누구하나 "나도 할 수 있어" 또는 "나도 저렇게 공헌(헌신)을 베푸는 자가 되어야 겠다"는 등의 감동을 받을 수 없다. 인생을 시작하는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에. 반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다 싶은 자가 있다. 자신을 위해 노력해도 부족할 판인데, 그런 자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원하여 거리 청소를 한다. 처음에는 손가락질을 받는다. 하지만 주변의 혹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꾸준한 모습으로 자원하여 거리를 청소해 나가면, 어느 순간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자들의 "돌 같이 굳은 마음"이 하나 둘 씩 "부드러운 옥토"로 바뀌게 된다. "자...

[아브라함의 숨겨진 비화] 예행연습 이후에 치뤄진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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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숨겨진 비화] 예행연습 이후에 치뤄진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시험. bibleseriesguide.com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시험을 무사히 통과한 전대미문의 대단한 영적 인물이다. 당시 시대는 자신의 아들들을 제물로 바치는 우상행위들가 몹시도 성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들(이삭)을 제물로 바쳐라"는 메시지를 사단의 음성으로 듣지 아니하고, (정확히 분별함으로써) 야훼 하나님의 음성으로 확신할 수 있었던 아브라함의 그 놀라운 믿음.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믿음이다. 그래서 그는 믿음의 조상이라 칭함을 받는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시험에 대해서 단번에 합격할 수 있었을까? 세상의 어느 누구도 단 번에 성공할 수 있는 그런 류의 "난제"는 없다. 난제는 숱한 시행착오 등을 통해서 겨우 풀 수 있는 어려움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아브라함에 대해 그의 가치를 깎아 내리기 위함은 아니다. 다만 우리네들이 "전통처럼 여겨오는 아브라함에 관한 신학적 내용"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측면에서 오늘 "아브라함의 숨겨진 비화"를 나누고자 한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이라는 아들만 있지 않았다. 이스마엘 이라고 하는 아들도 있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생애는 "한 아들과의 이야기"로만 설명될 순 없다. "두 아들을 가진 아브라함의 이야기"로서 우리들에게 설명되어야 함이 옳을 줄로 믿는다. 아브라함에게 큰 시련이 찾아온 일이 있다. 바로 이스마엘이 이삭을 "조롱"(mocking; צָחַק )하였다. 솔직히 조금 놀렸거니 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삭을 놀렸다는 "조롱"의 수위는 다음의 상황에서도 동일한 히브리어로 표현되어 있다. 창18장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וַתִּצְחַ֥ק )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