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슈아의 제자가 살아야 할 삶은 무엇인가?




인생을 사는 중에 누구든지 일(Work)을 하게 되고, 일한 것에 상응하는 대가를 얻게 된다. 이때 일의 대가를 중시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과정을 중시 여기는 이들이 있다.




이같은 차이는 왜 생기는 것일까?


여러 요인들이 있겠으나, 바라보는 시각 또는 일을 시작하는 마음의 중심에서 나타나는 차이 때문에 일어나는 사례를 나눠보고자 한다.


예슈아를 믿는 신앙인이든 믿지 않는 일반 사람들이든 모두가 '악하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그는 이웃에게 자신의 결과물을 제시하며 자랑한다. "나는 모두가 부러워 할 만큼의 재산을 가진 부자다"라고. 그리고서 자신이 소유하게 된 그 재산의 규모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서, 역시 재산의 규모가 초라한 이들에 대해서는 멸시하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런데 그가 그 많은 재산을 얻게 된 경위, 곧 과정을 살펴보면 '힘없고 약한 자들의 것을 착취하고 강탈하여 얻은 것'이라면 어떻게 될까? 자신의 재산을 얻은 '그 과정이 정당하지 않다'고 판명될 때, 모든 이들은 동일하게 그에게서 등을 지게 된다. 그리고 그가 그토록 자랑하는 그의 재산에 대해 어느 누구도 부러워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경멸과 비난의 눈초리만을 보낸다.




왜 그럴까?

그것은 과정이 정당하지 않으면 그 결과 역시 정당하지 않는다는 '오랜 역사를 통해 얻어진 진리' 때문이요. 이러한 진리는 독생자를 주시기 까지 사랑하셨던 세상(요3:16), 곧 야훼 하나님의 질서(order; kosmos, 요3:16)를 모든 이들이 따르고 있기 때문에 비롯된 모습이다.






그래서 예슈아를 믿고 따르는 우리들은 '일의 대가'를 얻는 그 과정에서 '믿지 않는 이들과의 차별성'을 두어야 한다. 이를 두고 '분별해야 하는 필요성'이라 말한다.


내가 결과를 얻기 까지 그 모든 과정이 정당했는지에 대해 우리는 항상 스스로 점검해야 할 것이다.


'콩 심은데서 콩이 나고, 팥을 심은데서 팥이 난다'


고 했듯이, '내가 먼저 뿌린데로 거둬들인다'는 그 내용이 율법의 본질이요 율법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야훼 하나님의 의도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7:!2)


따라서 정당한 과정을 통해 얻어진 결과를 볼 때, 우리는


그 사람과 그 사람이 얻은 결과(또는 제물)은 둘 다 동시에 선한 것으로 인정받게 된다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는 사실과 아울러, 과정이 정당하지 못할 경우


그 사람과 그 사람이 얻은 결과(또는 제물)은 동시에 악한 것으로 인정받게 된다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창4:5



는 성경 속 이야기의 교훈을 우리는 가슴 속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오늘(현재; present)이라는 선물(present)이 주어진 이유는 주님의 뜻, 곧 율법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질서(kosmos)가 어떠한 것인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주님의 질서가 온 세상이 기꺼이 인정하는 선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그 사실은, 다시 말해서 그 질서를 만드신 주님 역시 선하시다는 명백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옆 동료보다고 더욱 성실하게, 그리고 신실하게 일을 함으로써 모두가 인정하는 그런 일의 대가(결과)를 얻어내는 그런 자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런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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