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때에 가벼운 멍에를 지는 자
학생으로서 중간고사 또는 기말고사와 같은 시험은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있어서 시험이란 '하기 싫어하는 일' 중의 하나요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시험이라는 부분은 신앙인에게도 가장 듣기 싫은 말이요 삶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시험의 때를 면해 준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시험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고 오해하는 이들이 많다.
여기서 잠깐!
'면하여 준다' 또는 '면(제)한다'라는 말은 면역에 주로 사용되는 단어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감기 바이러스가 온 땅을 휩쓸 때, 어떤 이는 별다른 고통을 느끼지 못한 채 지나가는 반면 다른 어떤 이는 극심한 고통과 아울러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다. 이때 가장 중요한 차이는 '면역(력)'이다. 면역력이 높은 이와 낮은 이 모두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하지만 면역력이 높은 이는 바이러스의 효과가 전혀 문제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면역력을 더 높여주는 그런 기회로 작용된다. 따라서 면역력이 높은 이에겐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그 시점이 별 문제가 되지 않은 채로 넘어가게 된다. 면역학에선 이를 두고 '면(제)한다' 또는 '면제된다'라고 말한다.
학생으로서 성실하게 공부를 한 이에겐 다가올 시험이 무섭지 않다. 물론 신중해야 함은 있다. 그러나 두려움 가운데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런 상황은 오지 않는다는 의미다. 반대로 평소 공부를 하지 않았던 불성실한 학생의 경우는 다르다. 시험이 무섭다. 그래서 결국 자포자기를 해 버린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받게 될 합당한 처벌' 앞에서 스스로 시인하였다. 지난 날의 불성실했던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인정하였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런 그가 받게 될 처벌이 어떠한 것인지 알기에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되고 그 두려움 앞에서 스스로 자멸하듯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자포자기하게 되는 것이다.
고로 시험이라는 모든 것은 평소 성실히 공부한 이든 불성실하였던 이든 모두가 치뤄야 할 의무 또는 짐(load)인 셈이다.
예슈아는 말씀하셨다. 무거운 짐을 진 모든 이들을 향하여 '너희들의 모든 짐을 없애주겠다'라고 하지 않으셨다. 대신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마11:30)
짐 자체를 없애주겠다는 게 아니라, 가벼운 짐 또는 거뜬히 짊어질 수 있는 그런 짐을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해 앞서 언급했던 '면(제)하다'라는 의미를 떠올려야 할 것이다. '시험을 또는 환란을 겪지 않게 해 주겠다'는 식으로 오해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기꺼이 할 수 있는 혹은 기꺼이 극복할 수 있는 그런 수준의 시련과 환란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by ahmadiyyaliterary.org |
노아가 구원의 방주를 만들었다. (노아와 그의 가족을 제외한) 다른 모든이들은 스스로 대홍수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어느 누가 그 대홍수 앞에서 극복할 수 있겠는가? 모두가 대홍수 앞에서 자멸하고 말았다.
노아(와 그의 가족)는 달랐다.
방주가 마련되어 있었다. 모두가 자멸하였던 그 대홍수 속으로 방주와 함께 들어갔다. 물론 방주도 심하게 흔들리고 그 흔들림에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방주가 잠잠해지고, 그 창문을 열 때가 오면서 그들은 대홍수를 지나왔다는 그 사실을 깨닫게 된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24:37)
'노아의 때와 같다'는 그 말씀에 대해 우리가 오해하고 있었지 않았나 싶다.
모두가 대홍수 속으로 들어간다. 대부분은 스스로 통과해야 하지만,
노아만은 방주와 함께, 곧
노아만은 방주와 동행하는 삶으로
대홍수를 겪어나간 것이다. 그 결과 모두가 죽은 가운데 그들만은 생명을 얻었다.
고로 모두는 자멸하였기에 그들이 맨 멍에는 당연히 무거운 것이라. 하지만 노아가 맨 멍에는 능히 극복할 수 있었기에 '가벼운 멍에'였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것이 예슈아께서 말씀하신 #노아의_때와_같이, #인자의_임함도_그러하리라'고 하신 것이요. #가벼운_멍에'에 대한 설명이라.
따라서 무거운 멍에를 진 이들은 강압에 이끌려 시험에 참가하는 이들이요 가벼운 멍에를 맨 자들은 스스로 시험에 참가하는 이들이다. 자신이 맨 멍에가 어떠한 것인지는 스스로가 잘 알터. 그것은 자신에게 임할 결과 또한 그들은 이미 알고 있는 셈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
(요3:18a.새번역)
가벼운 멍에를 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가벼운 멍에는 무엇인지 이해하는 이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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