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21의 게시물 표시

신앙의 대표가 되려는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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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의 대표가 되려는 세대 흔히들 영적리더란 표현을 곧잘 쓴다. 그리고서 자신이 나라와 민족에 관한 영적 예언을 한다는 분들 역시 많이 만날 수 있다. ​ 그분들의 예언이 나라와 민족을 대표하는 예언, 또는 그가 나라와 민족을 대표하는 영적리더인걸까? ​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는다. 예슈아께서 인류의 죄를 사하러 이 땅에 오신 메시아라는 사실을 마음으로 영접하는 자 에 한해서만 예슈아는 그의 구원자요 영적 리더인 목자가 되신다. 반대로 영접, 곧 마음으로 믿지 않는다면? 예슈아는 그의 구원자가 되실 수 없다. 그가 거부했기 때문이다. ​ 구원자는 스스로 간구하는 자에게 임하실 뿐, 그의 심령에 강압적으로 임하시지는 못한다. ​ 또한 통치자는 백성을 그들의 소유로부터 몰아내려고 학대를 통해 그들의 상속 재산을 취하지 말며 (겔46:18a) 마찬가지다. 누군가 신앙 고백 혹은 간증을 한다. 그 내용을 듣던 중 누군가를 가르치려 는듯 간증 도중에 또는 간증의 내용에 대해 훈계를 하려하곤 한다. 간증하는 이가 도움을 청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 그때 훈계하려는 이는 스스로 영적 리더요 신앙의 대표가 되려하는 순간이다. 허나 어느 누구하나 인정하지 않는다. 그의 훈계, 곧 그에게서 어떤 훈계도 듣고자 원하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 그 순간 그의 훈계는 돼지에게 진주를 던짐과 같은 취급을 받게 된다. ​ 신앙의 대표 또는 훈계를 주려할 때는 반드시 갈급해 하는 자에게 다가가서 주어야 한다. 오직 그렇게 갈급해 하는 이가 여러분을 신앙의 리더요 대표로 인정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 아울러 누군가로부터 예언을 들었을 때, 그 예언이 나라를 대표하는 게 아닐 수 있다. 듣는 이가 영접하게 될 때 나라를 대표하는 혹은 나라와 민족을 위한 예언이 되고, 예언자는 신앙의 리더(대표)라는 < 인정을 받게 되 >는 것이다. 그러나 영접되지 않는 자에게는 그저 (나라와 민족을 향한) 많은 예언들 가운데 하나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되지 못한다. ​ 따라서 영접하는

하라(Do it) 그리고 하지 마라(Don't it)는 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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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Do it) 그리고 하지 마라(Don't it)는 계명 성경은 66권으로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주님의 뜻하심과 계획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다음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식민 통치를 받고 있던 당시 누군가가 '나와 함께 저 정복자들을 쳐서 그들의 보물을 빼앗자'라고 제안을 해 온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그와 함께 도적질을 하는 게 옳은 것일까? 아니면 그의 제안을 거부하고 도적질을 하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일까? 도적질을 하게 되면 식민 통치자들에게 항거한 애국자라는 칭찬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도적질을 거부하면,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일삼는 부도덕한 일로 양심의 질책을 받지 않게 될 것이다. 막막한 상황이다. 조언을 구해 본다. 한 사람은 말한다. "성경 속에 기록된 그 말씀을 기억해 보세요. 그 말씀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힘쓰라고 했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정복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옳은 일이라 했다. 그 옆에 있던 사람은 고개를 저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기 육신의 유익을 도모하는 일은 죽음에 이르는 일입니다." 애국지사가 되어야 할까? 아니면 신분을 떠나 모든 이들에게 정당한 일을 행하는 그런 자가 되어야 할까? 고민되지 않을 수 없다. 고민하던 중에 두 사람에게 각각 이렇게 질문을 하여 보았다. "성경 속에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힘쓰라는 내용 그리고 육신의 유익을 도모하는 일은 죽음에 이른다는 각각의 말씀들을 제외하고 나면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또다른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 말씀들은 어떤 경우를 지지할까요?" 에덴의 동산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과실수들이 있었다. 원없이 먹는다 할지라도 그 많은 종류를 다 맛보기란 쉽지 않을 터, 그렇다면 그것들에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하루 24시간은 부족하고 역시 1년 12달도 부족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야훼 하나님이 하신 말씀, 곧 '중심에 있는

중증근무력증으로 건강을 잃은 자가 회복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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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근무력증으로 건강을 잃은 자가 회복 될 때 | 남들보다 건강한 신체 조건을 타고 났던 나는 밤샘을 즐겼다. 누구보다 술을 많이 마시는 걸 자랑삼아 했고, 자판기 커피를 하루 10잔에서 15잔까지 마시는 생활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았다. 그렇게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자신감에 가득차 있었다. debauchery life 하지만 연구원 생활 1년, 곧 결혼한지 1년 만에 중증근무력증을 앓게 되었고 모든 사회생활은 물론 화장실에 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행동까지도 철저하게 제한받는 생활을 살게 되었다. 눈물로 기도했다. 내가 알고 있던 그 예슈아를 향해 매일같이 부르짖었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내용 중 치유받은 사례들을 거론하면서, 나도 이처럼 될 수 있다며 '믿음(belief)의 선포'를 연일 품어 댔었다. 숱한 치유의 은사자 분들, 예언자 분들을 만나 안수기도를 받았다. 기도 한 방이면 잃어버렸던 예전의 그 건강을 단순에 되찾을 수 있을거라 믿었다. 그러나 이내 믿음(belief)은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덧 그 믿음 자체를 찾아볼 수 없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 내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수준에서 건강은 서서히 회복되고 있었다. 혼자서는 화장실 볼 일도 제대로 볼 수 없던 이가 자연스럽게 화장실을 다녀오게 되었고, 상가 3층에 있는 교회에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 일조차도 버거워 했던 자가 3층 교회 전체를 청소하기까지 건강이 회복되고 있었다. 그런 회복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한결같이 요청하듯 말하였다. "집사님. 조금만 더 주님께 매달리듯 기도해 보세요. 치유를 해 달라고 기도해 보세요." "집사님. 내면의 죄을 깨닫게 해달라면서 회개에 더 집중해 보세요. 그리하면 치유가 될 거예요" "집사님. 신체의 치유가 늦은 이유는 집사님이 아직 주님의 뜻대로 온전히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회개하세요." 등등 여러 이유를 설명해 주면서 내게 부족한 신앙

우리가 모두 나사렛 목수의 동역자들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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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목공소의 연장들이 회의를 열었다고 합니다. 사회는 평소와 같이 망치가 맡아보았습니다. 그런데 회의 도중에 회원 몇 명이 반기를 들고 사회자 망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였습니다. ​ " 망치는 항상 깨고 부수는 자요, 늘 소란을 피우는 자니, 여기서 떠나야 합니다. " ​ 그러나 망치가 말했습니다. ​ " 좋습니다. 나 스스로도 나의 결점을 인정하므로 이곳을 떠나겠습니다. 하지만 나와 함께 떠나야 할 자가 있으니, 바로 대패입니다. 왜냐하면 대패가 하는 일에는 전혀 깊이가 없고, 늘 남의 껍질을 감싸기보다는 벗기기 때문입니다 . " ​ 이에 화가 난 대패가 말했습니다. ​ " 나뿐만 아니라 줄자도 나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줄자는 자기만 옳은 듯이 항상 남을 측량하므로 모두에게 덕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 그러자 조용히 듣고 있던 줄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톱을 지적하면서, ​ " 톱은 서로 연합하길 힘쓰기 보다는 분열을 조장 하고 있으니, 여기서 가장 불필요한 자입니다 . " ​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톱은 사포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 " 사포! 너도 너무 거칠어 . " ​ 이렇게 서로가 한창 다투고 있을 때, 목수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 모든 연장들을 총동원하여 순식간에 아름다운 가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서로 약점만을 들추며 다투던 그들은, 결점이 많은 자신들이 이처럼 좋은 일에 쓰임을 받은 사실에 감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기뻐했다고 합니다, ​ " 우리가 모두 나사렛 목수의 동역자들이구나! "

목격자. 그가 진실을 밝히길 꺼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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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 그는 어떤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어쩌면 가장 중요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있어서 소극적이거나 꺼리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대부분의 관객들은 그런 목격자를 향해 '이해할 수 없다'라거나 또는 '당신은 너무 이기적이다'라는 말로 비난하곤 한다. 하지만 자기의 이익에 반하지 않는 일, 곧 자기의 이익에 지대한 좋은 영향을 끼치는 일이라면 어느 누가 거부하려 하겠는가? 국회의원 선거 기간이 되면, 평소 화려하고 근엄한 차림의 그들이 서로 앞다투어 하층민의 복장을 하고서 소외받는 이들과 함께 동행하는 그런 모습을 자랑스럽게 연출하곤 한다. 상류 사회에 계층인것처럼 살아가는 그들이 누구 할 것 없이 앞다투어 낮은 계층민처럼 입고 먹고 웃기를 자청하는 이유는 자신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원직을 얻고 나면 사정은 달라진다. 소위 정의를 위한다던 그들의 공약은 말로써 맺은 허무한 약속이 되어 버린 채 그들은 상류 사회의 지배자가 갖는 모습으로 국민들을 군림하려 한다. 소외받는 이들의 고통을 함께하기 위해 하층민의 터전으로 내려오길 꺼려한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정당이 추구하는 이익과 노선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를 펼치는 정당활동은 철저한 이익집단의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심리적인 모습 대부분은 정치활동에서 여실히 관측할 수 있다. 오늘의 주제가 될 '사건의 진실을 밝히길 꺼려하는 목격자'라는 부분 역시 정당활동을 펼치는 정치에서 쉽게 엿볼 수 있다. | 내 정당의 이익과 부합된다면 그곳이 지옥 끝이라 할지라도 정치인들은 과감하게 뛰어든다. 하지만 자신의 정당 이익과 불일치한다면 그곳이 천국이라 할지라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부한다. 이익에 부합되느냐 혹은 부합되지 않느냐에 따라 목격자는 진실을 밝히려 하거나 혹은 진실이 밝혀지기를 거부할 것이다. 그럼 자신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는 일이라면 무엇이 있을까? 다른 많은 경우들이 있겠지만, 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