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 있는 건가 아니면 누워있는 건가




광활한 우주.

그곳에 내가 있다. 혼자서.


내 주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어둠만이 있다. 그때 나는 생각한다.



나는 서 있는 걸까?

 

누워있는 걸까?



아무것도 없는, 곧 나의 모습이 서 있는 지 혹은 누워있는 지를 분별할 수 있는 비교대상이 없는 상황 속에서 나는 서 있는 걸까? 아니면 누워있는 걸까?


어느 누구도 말을 할 수 없다.





| 홀연히 나타난 비교대상


그가 스스로 말하길 '나는 기준이다'라고 한다. 즉 그는 위와 아래, 앞과 뒤 그리고 왼쪽과 오른쪽을 나누어 말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고 한다.


그가 나타나자, (서 있는 지 혹은 누워있는 지를 알 수 없던) 나는 누워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기준이 나타나기 전에, 나는 이미 누워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준이 없었기에 누워있었으나 누워있다고 말할 수 없었을 뿐이다.


롬5: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 아무것도 없어서 그저 혼돈만이 가득하던 이 세상에 기준이 나타났다.

그 기준으로 말미암아 내가 누워있음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누워있는 지 혹은 거꾸로 뒤짚혀 있는 지 조차 알지 못하던 허다한 이들에게도, 기준이 홀연히 나타나자 그들의 상태가 어떠한지 환히 밝혀졌다. 그러자 자신이 서 있다고 자신있게 주장하던 이들은 누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자신의 주장이 틀렸음을 알게 되고 기준과 기준이 들려주는 모든 사실을 자신의 마음 중심에 영접한다. '기준은 모든 것의 옳음이다'라며. 그리고는 지난 날 틀린 사실을 주장하던 자신의 행함에 대해 주변에 미안하다 용서를 구하고, 이후부터는 기준에 맞춰 자신의 상태를 판단하여 말하는 자가 되었다. 기준이 서 있다고 말하면, 자기의 상태를 서 있다고 말한다. 기준이 누웠다고 말하면, 자신의 상태는 현재 누워있다고 말한다. 



롬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마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육신의 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영의 일: 주의 나라와 그의 의



한편 어떤 이들은 기준이 틀렸다고 말하며, 여전히 자신은 서 있음이 맞다고 말한다. 기준이 자신들의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장은 더더욱 (완악하여 질 만큼) 강해졌다. 그는 기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준이 옳다고 하는 그 사실을 마음에 영접하지 않았다. 기준을 시기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기준이 가리키는 모든 것을 부인(deny)하기에 이르렀다.



요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이제는 자신이 서 있는 지 혹은 누워있는 지의 판단 여부가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기준과 기준이 가리키는 모든 사실이 싫을 뿐이다. 주변의 많은 이들이 '기준은 옳아'라고 말하여도, 그는 귀를 닫아 버리고 그저 스스로 외칠 뿐이다.


      "기준은 틀렸어"

      "기준이 잘못 된 거야"

      "나는 옳아"

      "내가 하는,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게 옳아"



| 나는 어떤 자일까?


오늘의 내 모습을 내 스스로 판단하여 "주장하는 자"일까? 아니면 기준이 들려주는 말로 나의 모습을 "설명하는 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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