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20의 게시물 표시

땅 위에 사람을 만드신 것으로 인해, 주께서 슬퍼하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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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땅 위에 사람을 만드신 것으로 인해 슬퍼하시며 또 그것으로 인해 마음에 근심하시고 (창6:6.흠정역) '슬퍼하다'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atsab( עָצַב ) 이라 한다. 이는 'displease'를 의미하는 단어로서 'to hurt, pain, grieve'이란 뜻을 갖는다. please라는 단어는 '제발'(도와주세요) 또는 '부디'(간청합니다)라는 단어다. 간절하고 애절한 마음의 상태 또는 성경 속 표현으로 바꿔 말하자면 '상한 심령에서 나오는 갈급함'이 잘 묻어 있는 표현이다. 그런 표현의 단어를 조금만 바꿔 'pleased'라고 하면, 이것은 (특별한 대상이 채워짐으로 인해)'기뻐하는' 또는 '만족하는'의 뜻이 된다. 그래서 displease라는 의미는 특별한 대상이 채워지지 못하여 겪는 슬픔과 고통 그리고 내적 상처 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영어의 표현으로 히브리 원문에 있는 atsab(아짜본)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알고 있는 atsab의 의미다. 만일 이것으로 끝이라면 오늘의 나눔은 그다지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숨겨져 있던 신비로운 의미를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 창세 당시 범죄한 여자(하와)에게 야훼께서 주셨던 고통이 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고통과 수태를 크게 더하리니; 네가 고통 중에 자식을 낳을 것이요 (창3:16a.흠정역) I will greatly multiply thy sorrow and thy conception; in sorrow , thou shalt bring forth children;   (KJV) |  본시 고통과 수태는 서로 나뉘어 있었다. 하지만 창3:16에서 고통과 수태는 하나가 된다.  하지만 창3:16에서 고통과 수태는 하나가 된다. KJV에서는 ( 내면의 고통으로서 ) ' sorrow '와

영적 성숙의 단계; 행함이 먼저요 권위는 그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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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자신의 위대함을 내세움으로써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복종하듯 순종하기를 바라곤 한다. 물론 나 역시 그와 같이 생각했던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화려한 경력을 내세우거나 혹은 높은 지위를 내세울 때,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보고 ' 이들이 나를 인정하는 구나 ' 하고 생각한다. 정치인이나 목회자 분들과 같은 경우, 자신들의 연설이나 설교를 듣겠다며 모여드는 이들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지지자 또는 성도들의 무리들이 마치 밀물과 썰물처럼 행동한다는 데 있다. 처음에는 정신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밀려 왔다가 흔적도 없이 빠져나가 버린다. 그럴 경우 그 수 많던 '그들이 과연 정치인 또는 목회자를 신뢰하였던 것일까?'라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과연 그들이 정치인이나 목회자 분들을 신뢰하였다고 볼 수 있을까? 없다. 정치판에서 일어나는 지지자들의 변화는 그래도 그러려니 하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목회 현장에서 일어나는 그런 일들에 대해 목회자는 물론 성도들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파급효과는 매우 크다. 한순간에 빠져나가 버리는 상황을 본 이들 중에서 힘들게 일궈놓은 그들의 신앙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리는 그런 경우를 종종 보아 왔다.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곳에서 그와 같은 모습들이 일어날 때, 나름 열심을 낸다고 하는 이들이지만 마음의 중심까지 흔들리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 그래서 생각해 보길 원한다. | 과연 성도들은 목회자를 신뢰하기 때문에 그분의 설교를 듣고자 몰려오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은 어쩌면 ' 목회자와 성도간에 신뢰관계가 세워질 수 있을까? '라는 질문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우리들 스스로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부모들의 입에서 간혹 나오는 말이 있다. " 내 아들(딸), 이제보니 다 컸구나! " 어느 때에 이런 말을 하게 될까? 평소 자신의 자녀에 대해 아직도 어리다고 여기는 부모다. 그런데 어느

Gear가 보여주는 야훼 하나님의 구속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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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ar라 하면 기계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 주된 통로다. 즉 정지해 있어야만 하는 쇠붙이가 살아 움직이는 존재처럼 만드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Gear다. 쇠붙이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힘, 곧 에너지를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옮겨주는 역할을 Gear가 담당한다. 그래서 사실상 기계에 각 부속품들은 떨어져 있어야 함이 옳은데 반해 Gear는 항상 붙어야만 제 구실을 할 수 있다. ​ 그런 Gear를 유심히 눈여겨 볼 기회가 생겼다. 아들 녀석과 이야기를 하던 도중, 아들의 말에서 큰 이치를 보게 된 것이다. 두 개의 Gear가 맞물려 돌아갈 때에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회전한다 고 말을 했다. 이것은 그리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나의 뇌리를 강하게 때리는 그런 깨달음을 안겨주는 말이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Gear는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 하지만 둘의 회전하는 방향은 정반대의 방향이다. 서로 합력을 하는 관계이지만, 정작 회전하는 방향은 정반대다. 이럴 경우 Gear에 맞물려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 무언가는 서로 반대방향을 향해 열심히 나아갈 것이고 그 결과 한없이 멀어지는 관계를 만들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하나의 Gear가 더 장착된다면 어떻게 될까? 총​ 3개의 Gear가 서로 맞물려 회전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아까와는 조금 다른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가 있다. ⓐ, ⓑ, ⓒ 3개의 Gear가 있을 때, ⓐ는 ⓑ와 맞물려 회전하고, 마찬가지로 ⓑ와 ⓒ가 서로 맞물려 회전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와 ⓒ는 서로 맞물릴 수 없는 상황인데, ⓑ에 의해서 맞물려 있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다. 즉 ⓑ가 없다면 ⓐ와 ⓒ는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는 관계인데, ⓑ로 말미암아 이 둘은 마치 본래부터 하나였던 양 행동하고 있다. 이때 그들의 회전 방향을 한 번 유심히 살펴보길 바란다. ⓐ의 회전방향에 대해 ⓑ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회전한다. 하지만 ⓑ가 ⓐ와 정반대의 방향을 택해준 것으로 인해 ⓒ는 자연스럽게 ⓐ와 같은 방향으

정부가 법을 계속 만들고 개정하고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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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평소에 법을 어기지 않고도 잘 살아가는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 그런 이들은 어떤 삶을 사는 이들일까? 대개는 스스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려 하지 않고, 이탈을 하려 한다. 쓰레기를 지정된 곳에 버리는 게 아니라, 자기 편한 대로 버리려 한다. 주변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도록 낮은 소리로 말해야 하는데,  자기 편한 대로  목청껏 소리를 낸다. 길을 걷는 이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함부로 침을 뱉어선 안 되지만, 자기 편하자고 아무대나 침을 뱉어댄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선진국 시민으로서의 시민의식이 부족한 자'라고 말한다. 쉽게 말해 '의식 수준이 낮은 사람'이란 뜻이다. 그래서 자기 편할 대로 생각하고,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함부로 행동한다. 이를 두고 정부는 '의식 수준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여기고, 계몽운동을 일으킨다. '교육' 수준을 높여서 배움의 수준을 향상시켜,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준다. 그 결과 어떤 순간에 어떤 장소에 있더라도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여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분별한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 판단을 통해 행동하고 말한다. 그와 같이 행동하는 이를 두고 우리는 말한다. ' 그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다 ' 라고. | 의식 수준이 높은 이들이 많은 사회는 굳이 개인의 행동을 제한할 필요가 없다.  추가적인 법 제정을 따로 하지 않더라도 시민들 스스로가 잘 어울려 지내는 방법을 터득하였고, 그래서 별다른 탈 없이 서로간에 잘 지낼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된다. 하지만 의식 수준이 낮은 이들만 있는 사회에서는 매순간 그리고 상황이 바뀔 때마다 그들의 행동 하나 하나를 제한해야 한다. 이것은 할 수 있고, 이것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그런 가이드라인을 늘 제시해 줘야 한다. 그래야만 겨우 별탈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