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가장 좋은 것은?


| 부족함 없이 자란 아이의 미래는 어떠할까?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지 아니하는 부모는 없다.
할 수만 있다면 자녀에게 다가올 모든 어려움을 부모인 자신이 대신 겪어주기를 바라는게 부모의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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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그릇을 만들려고 할 때, 곱게 빗은 도자기를 그냥 말려서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좋은 흙을 가지고 장인의 손길을 거쳤다 할지라도, 도자기가 아름다운 빛과 강인함을 갖기 위해서는 1,000℃가 넘는 뜨거운 가마 속에서 견디어 내야만 한다. 이같은 혹독한 시련 속에서 견디어 낼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놀랍고 아름다운 빛을 내뿜을 수 있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인내했던 그 강인함은 어떤 환경에서 얼마나 긴 시간 등이 흐를지라도 변하지 않는 모습을 갖게 한다.

이것이 창조주께서 만물에 새겨 놓은 창조의 질서다.


| 노력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다.


간단한 말이지만 그 깊이를 측량하기 어려울 만큼의 거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자녀에게 땀흘려 견디거나 혹은 극복해야 하는 어려움 대신에 온갖 편리를 누릴 수 있는 부유한 생활만을 자녀에게 제공한다면, 그 자녀는 그 인생에서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12:24.개역개정)


| 노력하지 않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있을 수 있을까?


간혹 오해함으로 인하여 크게 잘못된 판단을 하는 이들이 있다. 그것은 천재들에 대한 오해다. 천재는 노력하지 않아도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놀라운 능력을 소유한 자로 안다. 천재는 노력하지 않는 자일까?

Watts Up With That?


1979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던 스내퍼 교수가 이휘소 박사에게 했던 말을 인용하면 이렇다.




사실은 자네를 가르치기 위해 나도 밤을 새워 공부를 했다네.

자넨
아인슈타인이나 페르미, 그리고 오펜하이머 같은 사람들의
뒤를 이을 수 있는  수재야.

그러니 더욱 열심히 하게.

노력하지 않는 바보는 있어도,
노력하지 않는 천재는 없으닌까 말이야.

천재는 살을 깎는 고통을 느낀다 할지라도 그 고통을 기쁘게 여기고서 자신의 즐거움을 기꺼이 누릴 줄 아는 자다. 천재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고난을 두려워할지라도 최소한 피하지 않는 자다. 그런 자들만이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능력을 엿보게 된다.

자녀를 키우는 우리 부모된 이들은 이러한 사실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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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의 첫 시작은 미약하다. 

인간의 탄생을 보라.
미숙한 아이로 태어나 멋진 사람으로 성장하지 않는가? 어느 누가 완숙한 상태로 태어난단 말인가?

이같은 사실을 부모된 우리들은 인정해야 한다. 내 자녀가 부족한 아이이기 때문에 남들보다 뒤쳐진 것이 아니라, 본시 미숙한 상태로 태어난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미숙했던 부분들을 보완하여 나감으로써 누구보다 강건한 자로 성장하는게 인생이다. 부모는 이를 위해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욥8:7.개역개정)

미숙했던 자녀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때, 미숙함은 점점 사라지고 성숙한 모습을 갖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는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

'노력'을 필요로 하는 순간은 어느 때일까?
성공했을때? 아니면 실패했을때?


우리는 실패를 통해서 보다 나은 것을 얻는다. 곧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실패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고 반드시 극복하겠다는 굳은 의지만 있다면, 그는 실패한 원인을 찾게 될 것이고 그 원인을 찾음으로 인하여 실패를 안겨준 그 장애요인을 뛰어넘는 놀라운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
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한 자는 자신의 부모나 그외 능력있는 이들을 통해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요인을 제거해 버린다. 그리고 성공의 반열에 올라선다. 그런데 이같은 성공은 오래가지 않는다. 부모나 자신을 돕는 손길이 사라진 상황에서 이전의 어려움이 또다시 나타난다면 그는 여전히 그 앞에서 무릎을 꿇어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녀가 100점을 맞았다는 자체에 기뻐하며, 100점을 획득하는 것에 자녀의 목표를 두면 그릇된 자녀 또는 홀로 설 수 없는 무능한 자녀를 만들게 된다. 하지만 자녀가 공부하는 것을 즐거워하도록 이끈다면, 언젠간 100점을 획득할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에 만족하지 않고 그의 열심은 더 난해한 학문 속으로 기꺼이 뛰어들 것이다.

어느 누구도 천재보다 뛰어날 수 없다.
하지만 즐기는 자는 능히 천재를 뛰어넘는다.

그렇기에 부모가 자녀를 위해 행할 바는 분명해졌다. 현명한 부모가 자녀를 위해 준비하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이제는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자녀가 어떤 수준인지는 누구보다 잘 아는 부모

그렇기에 자녀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자녀에게 고난을 제공한다. 그 고난을 자녀가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부모는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자녀가 한 순간에 문제를 해결한다면 얼마나 기쁘겠는가? 하지만 그런 상황이 일어난다면 그건 부모가 자녀의 수준을 너무 과소평가했다는 결과이지 않을까 싶다.
최소한 시간을 두고 고민할 수 있는 상황을 마련해 줘야 한다.

바보는 고민하지 않는다. 배부른 돼지는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천재는 기꺼이 고민한다. 배고픈 인간은 이성을 가지고서 논리적인 사고를 행한다. 이처럼 고민을 할 때, 창의적인 사고가 자라게 되고 숨겨져 있던 잠재력이 드러나게 된다.

No pain No gain!


누군가의 도움을 통해 상황을 벗어나는게 아니라, 스스로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는 더이상 속박된 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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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 빠졌을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건져내어짐을 받을 수 있는 이에겐 바다라는 존재는 항상 두렵고 자신을 속박하는 존재다. 하지만 스스로 수영을 할 줄 아는 자는 바다를 두렵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즐길 수 있는 놀이터가 된다.
속박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는 자는 이처럼 그 순간부터 자유한 자가 된다.

이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유산(갈3:31)이지 않을까?

|  신앙에서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이것은 죄다. 이것은 선이다. 그러니 하지 말아라'라고 알려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녀가 '죄를 범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된 것에 매우 만족해 한다. 하지만 부모가 평생 함께 할까? 그렇지 않음을 우리는 안다. 그래서 바꿔야 한다. 자녀가 스스로 죄를 범하지 않도록, 어떤 행위가 죄가 되는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자녀의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하기 보다는, 죄를 범할 수 있는 조건들에 일부러 방치하듯 놓을 수 있는 담대함이 부모에게 필요하다.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들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은
삿3:1~2.개역개정

|  부모가 없는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 죄를 멀리할 수 있는 마음은 어디에서 생겨날까?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속담이 있듯이, 죄가 악하고 나쁘다는 것은 '전해 듣는 간접경험'으로만 체득해선 안 된다. 자신이 직접 경험해야 한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이렇듯 
현명한 부모는자녀의 수준에 맞는 어려움을 제공하는 자
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자녀가 스스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자로 온전히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녀에게 자전거를 가르칠 때,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스스로 타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타는 법만을 가르치는게 아니라, '넘어지는 법'도 가르쳐야 한다고 한다. 자전거를 타다 보면 반드시 넘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모든 운동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사실 '넘어질 때 다치지 않는 낙법'을 익히는 것이다.

털어서 먼지가 나지 않는 사람은 없듯이, 인생을 사는 중에 죄를 범하지 않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때도 낙법이 필요하다. 죄의 경중을 떠나서 넘어졌지만 다시 먼지를 털고 일어설 수 있는 그런 삶의 자세를 배워야 한다.

그래서

|  자신의 실수를 당당하게 인정할 수 있는 자가 큰 자다.

실수를 했을 때, 당당하게 용서를 구하는 자가 큰 자다.
자신의 부족함을 당당하게 드러내고서, 주변에 합당한 도움을 청하는 자가 진정으로 합력하는 자다.

이같은 자가 진정한 지도자다.

여러분의 자녀가 이같은 성숙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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