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20의 게시물 표시

마지막 때가 이르기 전, 교회(공동체)안에서 일어날 모습들

이미지
예언자들은 거짓을 말하고, 제사장들은 제멋대로 권력을 휘두르고, 내 백성은 그런 제사장들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 때가 오면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예레미야 5:31(쉬운성경) 거짓을 말하는 예언자들이 넘쳐나고, 영적권위를 운운함으로 권위를 남용하며, 그런 모습을 보고도 '그릇되다'라고 말하지 못한 채 그저 함박 웃음을 지으며 환호서만 지른다. 이는 어떤 모습인가? 우화는 어린 아이들만을 위한 게 아니다. 그릇된 것을 그릇되다고 말하지 못하는 그런 어리석은 어른들을 위해 마련된 교훈이라 생각한다.​ 오늘날의 교회(공동체)가 울고 돌이켜야 할 부분이지 않을까?

무엇이 거듭남일까? 생활 속에서 느끼는 그것이다.

이미지
faith and sight 젊은 바리새인 니고데모가 늦은 밤 중에 예슈아를 찾아와서 묻는 대화 가운데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그 단어는 거듭남(re-born)이다. 거듭남이라는 단어는 당시 신학적 체계에서는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단어였다.  니고데모는 단순한 신학자가 아니다. 그는 종교적인 명망을 통해 백성들의 삶을 지도하는 그런 위치에 있던 자였다.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요3:1) 신학적으로 전혀 부족할 것이 없겠다라고 여길 만한 신분적 위치에 있던 그가 돌연 예슈아를 찾아와서 뜬금없는 말을 한다.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요3:2) 이 말인 즉슨 무엇을 의도하고 하는 말일까? '설명하긴 어렵지만, 당신은 분명히 야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라는 의도가 깔려있지 않겠는가? 사람들은 볼 수 없지만 자신은 그와 같은 면모를 볼 수 있는 영적 안목이 있음을 넌즈시 알리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훼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그 대목만큼은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제시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이러한 표적들'만을 예시로 제시한다. 이미 눈에 보이는 증거들만을 제시함으로써 '야훼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다'는 내용을 사실로서 인정하려 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그의 신앙이 진정으로 옳다고 여길 수 없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눈에 보이는 기사와 표적만으로 '야훼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사람'이라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나서, 큰 표징과 기적을 일으키면서,  할 수만 있으면, 선택받은

탈무드는 왜 예화를 통해 말해야 하는 것일까? 히브리어의 비밀을 찾기

이미지
 탈무드는 왜 예화를 통해 말해야 하는 것일까? 히브리어의 비밀을 찾기 탈무드의 한 내용을 소개해 보자. 수다쟁이면서 허풍이 심한 여인으로 인해 마을 주민들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여인의 수다와 허풍에 시달리다 못한 마을 주민들이 급기야 랍비를 찾아갔다. 랍비를 찾은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겪었던 피해들을 이야기했다. 마을 사람들의 피해를 다 들은 랍비는 조수를 불러 수다쟁이 여인을 데려오게 했다. 랍비 "당신은 어째서 마을 사람들을 향해 말을 만들고 소문을 내는 것입니까?" 여인 "실제보다 약간 과장된 것은 있지만,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려고 했을 뿐이예요. 어떤 것들은 사실도 많아요." 랍비는 그 여인에게 깃털이 든 가방을 주고서 광장으로 가라고 했다. 랍비 "깃털을 길바닥에 하나씩 내려 놓고서 집으로 가세요. 도착하면 다시 내려 놓은 깃털을 하나씩 주워모으면서 광장으로 가세요." 랍비가 시킨대로 여인은 깃털을 하나씩 내려 놓으며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무척 쉬웠다. 그리고 이번에는 깃털을 다시 주워 모으면서 광장으로 오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어려웠다. 심지어 불가능했다. 이 모든 사실을 여인은 랍비에게 털어 놓았다. 랍비 "험담이라는 것은 그 자루 속에 든 새털과 같은 것입니다. 한 번 입에서 나오면 다시 주워 담기란 어렵답니다." 여인은 자신의 모습에 뉘우치고서 다시는 수다와 허풍을 떨지 않았다. 탈무드는 수 많은 랍비들이 질문에 질문을 거듭하면서 만들어진 교훈과 훈계를 담고 있는 이야기다. 따라서 수 많은 랍비들에 의해 걸러지고 걸러져서 오로지 순수한 결정체만 남은 것이 바로 '교훈과 훈계'를 담은 창조의 이치(principle)라 할 수 있겠다. 삶의 모든 사실들 가운데 (군더더기는 제거하고) 꼭 필요한 사실만을 기록한 것이다. 그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