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20의 게시물 표시

투자에 성공하고 싶을 때, 기억하고 싶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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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가 있다고 해서 (면허증이 없는) 차를 몰고 나와도 될까요? 군대에 입대했다고 해서 (훈련소에서 훈련도 받지 않은) 장병에게 실탄이 장전된 총을 보급하여 나라와 민족을 지키라고 권할 수 있을까요? 도로에 나오려면 자동차가 있어야 하는 것은 필수 사실이죠. 하지만 자동차를 능히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는 건 잘 압니다. 컨트롤 할 수 있는 자가 도로 위에서 안전한 운행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총을 쏘는 법도 모르는 장병에게 실탄이 장전된 총을 보급하여 나라와 민족을 지켜달라고 부탁한들, 그 장병이 자기 자신이라도 지킬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은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 자동차도 실탄이 장전된 총도 유익한 것이 됩니다. 컨트롤 할 수 없는 이에게 자동차와 실탄이 장전된 총은 오히려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까지 위험에 빠뜨리게 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여유 자금이 있다고 해서 투자해 보겠다고 달려드는 것은 이처럼 위험할 수 있다는 뜻에서 드리는 조언입니다. 섣부른 투자는 자신은 물론 가족 모두에게도 위험을 몰고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투자를 하지 않는 경제적 활동도 좋은 것은 아니겠죠. 따라서 투자를 하기에 꼭 필요한 사실들이 무엇이 있는지 함께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평민 또는 평신도라 부르면 안 되는 성경적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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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 당시 창조주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를 창조하신 그 근본으로서 우리에게 새겨져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교회(공동체) 안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말이 있다. 목회자와 평신도다. 평신도는 목회자(와 관련 사역자들)를 제외한 믿는 자들을 이르는 통칭으로 사용된다. 성경 안에는 백성 내지는 (천국)시민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외 평신도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평신도와 백성, 성도, 그리고 시민'이라는 단어의 뜻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 국가를 이루는 이는 국민이다. 그래서 국가를 이루는 국민을 가리켜 '백성, 시민, 평민, 인민' 등의 단어를 사용하여 부르곤 한다. 이 단어들의 차이를 먼저 살펴봄으로써 앞서 의문을 품었던 사실에 대해 답을 하고자 한다. | 평민 평민(平民)이라는 말은 귀족과 달리 피지배계급을 일컫는 말로써 영어로는 commons라고 한다. 이는 계급을 기준으로 나눈 것으로서, 해당 계급에 속하는 무리들은 모두가 동일한 존재로만 인식된다. 그래서 귀족 계급이 아닌 피지배계급에 속한 이들 평민을 사회주의에서는 '인민'이라는 단어로 부른다. '인민'이라는 단어와 연결되는 또 다른 단어는 uniform이다. 인민은 인민이라는 정체성 외에는 모두가 평등하다. 차등이 없다. 이들에게는 오로지 '평등(균등)한 분배'만이 원칙이다. 이 원칙에 따라 '인민복'(uniform)을 입어야 하고, 배급(uniformal distribution)이 주어진다. 그리고 이 계급의 생각은 중요치 않아서 그저 명령에 대한 복종(obedience)만을 강요받는다. 이처럼 공통분모처럼 따라다니는 단어는 Unit(개체)다. 목적에 따라 사용되는 개체로서 목적이 사라지면 그 개체의 존재여부

당신만의 재치있는 새해 덕담은[feat 스스로 공부하는 자녀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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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담이란 무엇일까? 새해를 맞이할 내가 맞이할 '좋은 소식'(Good News; Gospel)이지 않겠는가? 내 자녀에게 줄 좋은 소식이 있다면? 하지만  어떤 내용이 내 자녀에게 좋은 소식일지 모른다면 자녀에게 어떻게 덕담으로서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겠는가? 새해를 맞이할 내 자녀에게 줄 좋은 소식(Gospel)을 찾기 위해 함께 이 영상을 나눠보길 원합니다. 내 자녀에게 가장 좋은 미래가 다가오길 바란다면, 내 자녀가 비겁한 모습으로 미래를 맞이하기 보다는, 당당한 모습으로 미래를 맞이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담아 덕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상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제안한 의인 10명. 그 당시 아브라함 외에 의인이 있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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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인이라 함은 누구인가? 야훼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이다. 그럴 때 우리 믿는 이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슈아를 구주로 영접하는 단계와 성화로 이어지는 삶이 전제될 때, 칭의(의인이라 불림)가 있다고들 말한다. 이때 아브라함의 경우는 갈대아의 우르지역에 있을 때 이미 야훼 하나님을 만났(행7:2)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여정은 이미 영접한 자의 삶이었다. 그리고 베드로의 서신서를 보면,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벧후2:7~8.개역개정) 따라서 성경에서 볼 수 있는 사실로서, 아브라함 당시의 의인은 도합 2명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하시겠다는 뜻을 보이신 야훼 하나님께 뜻밖의 제안을 한다.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창18:32.개역개정) 이때 야훼 하나님도 선뜻 아브라함의 제안을 수용하신다. 물론 아브라함의 무모한 제안은 의인 50명에서 출발하여 45명, 40명, 30명, 20명으로 점점 줄어들다가 마지막으로 10명의 의인이 최종 합의결과로 채택되었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의인 50명을 말한 의도도 의외지만, 숫자를 줄여나간 그 의도 또한 아브라함 자신도 의인이 자신과 롯 외에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의도하기로는  " 롯은 의인이온데,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 라고 묻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창19:29.개역개정)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부자 되기 첫 단계, 따뜻한 아침을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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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를 살아가면서 든든한 아침을 먹는 가정은 몇이나 될까요? 대개 아침을 거르거나 혹은 간소화 시키는 경향이 많습니다. 피곤하기 때문에. 일을 많이 합니다. 자녀들 학비 또는 사교육비로 많은 돈이 지출됩니다. 그러다 보니 피곤하도록 돈을 벌어도 돈이 모일 수가 없습니다. 고정적으로 지출되어야 할 가정의 씀씀이가 많기 때문이죠. 이러한 악순환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해결책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고 봅니다. 배고픈 자는 정밀하고 정교한 사고가 요구되는 일을 맡을 사고능력이 없는 것처럼, 기력이 없는 자에게 큰 일을 맡길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능력이 없는 게 아니고, 배가 고픈 것 뿐입니다. 본시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결핍 때문에 힘이 없는 것입니다. 그 배고픔, 결핍은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요? 가정입니다. 가정에서 채울 수 있고, 부모가 채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올바른 출발을 할 수 있다면, 우리 모두는 능히 가화만사성의 하루를 살 수 있으며, 그로 인하여 부유한 한 해를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영상 속에서 더 자세한 내용들을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자녀에게 위인전을 읽힐 때 이것 만은 강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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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 아이는 위인전을 읽어야 하며, 위인전에서 배워야 할 바는 무엇일까? 다시 말해서 나와 내 아이는 천한 신분의 가치 없는 존재일까? 그게 아니라면 고귀한 존재일까? 내가 무언가를 배운다는 부분에서 그 배움이 내게 가져올 변화는 무엇이 될까? 이러한 질문이 '나의 오늘은 어떠했으며 나는 내일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에 명확한 깨달음을 줄 것입니다. 영상으로 함께 나눠봅니다.

허락받지 않은 자가 예배에 참석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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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예배는 귀하고 소중한 것이며 마땅히 행해야 할 계명 그 자체다. 그래서 누구든 예배를 지키겠다고 말한다. 심지어 필자 조차도. 그런데 그토록 귀하고 소중한 시공간에 소위 개나 소나 다 참석할 수 있단 말인가? | 최고의 국가 안보회의가 열리는 자리다. 그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아무나 참석할 수 있도록 그 회의장의 문은 활짝 열려 있을까? 두 눈을 부릅 뜨고 사방을 둘러 보라. 가장 귀중한 것을 누구에게나 허용하는 곳이 있는지. 교회(공동체)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할 때, 정말 아무나 들어오라고 쌍손을 들고 모두를 환영하는지 궁금하다. 심지어 담임 목회자를 향해 혹독히 비난과 조소를 날리는 원수같은 자에게도 예배의 문을 활짝 열어줄 수 있을까? |  성경은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누구나 예배에 오는 게 아니라고. 이같은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거론된 단어는 '택함받은 자'다. 홍해를 지나 광야로 들어갈 수 있는 이들은 오로지 '허락된 자들'뿐이었다.  우리가 의미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 누구든지 '라는 단어와 ' 택함받은 자 '의 단어에 차이는 없는 것일까? whoever 와 choosen people 에 명확하게 드러나는 어떤 구분은 없나? 서울대학교 학생이라는 자격은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든지'(whoever) 자격이 있다. 그래서 이러한 자격을 지닌 이를 우리는 '후보자'(candidate)라고 말한다. 누구든 서울대학교의 학생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하지만 실제 서울대학교의 학생이라는 자격은 '누구나'에게 주어지지 않고, 열심을 다해 학창시절을 살아온 몇 몇 학생들에게만 허락된다. 곧 자신의 학창시절을 헛되게 보내지 않은 그런 이들에게만 선택적으로 자격이 부여된다. 따라

2020이젠 부자가 되어 볼까요?. Double Twenty project for being the r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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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돈(재물)이 많으면 그 마음에 부자만의 여유가 생길까요? 아량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부자가 오히려 푼 돈에 더 강한 애착심을 갖는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부자가 더욱 돈을 갈망하죠. 따라서 재물이 많다고 해서 부자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추론을 바탕으로 삼는다면, 재물이 없다고 해서 가난하다고 말할 수 없겠네요. 따라서 부자가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가난한 마음 또는 가난한 생각으로부터 먼저 벗어나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럴 때 그는 마음에서 여유가 생기고 아량이 자랄 것입니다. 여유와 아량은 가진 자들 만의 모습이기 때문에, 그 순간부터 그는 가난한 자에서 벗어난 부자가 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우리가 함께 나눠보길 원합니다.